타인에게 화가 난 걸까요? 자신에게 화가 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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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말해도 전달될 텐데, 화부터 내는 사람이 있죠. 경멸이 주특기인 사람도 있고요. 상대가 화를 돋우는 경우도 있겠죠. 감정의 표출은 어쨌든 복합적이니까요. 그래도 공격적인 말투나 행동이 기본값인 사람들은 어디나 존재하죠. 저의 형은 고등학교 때 담임이 양말을 입에 물게 했다는군요. 체벌인가요? 학대인가요? 정신적 측면에서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극한의 학대가 분명하지 않나요? 학생이 잘 되라고, 입에 양말을 물게 했을까요?
저희 아버지 경우에는 처가 식구를 언급하며 어머니에게 모욕감을 주는 게 일상이에요. 너네 집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가난한 친정 식구 때문에, 어머니가 생활비를 몇 번 빼돌리신 게 평생 약점이 된 거죠.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닌데, 아버지는 늘 건드리세요. 딱히 대응 방법이 없는 어머니는 참다 참다 소리를 지르게 되죠. 저는 아버지의 심리가 궁금해요. 분이 여전히 안 풀리신 걸까요? 우리 집안이, 너네 집안(처가) 보다 낫다. 우월감을 확인하셔야 해요. 아버지는 예법, 호칭, 족보(누구의 몇 대 손이다)를 달달달 외우는 게 취미시죠. 누군가가 그런 쪽에서 말실수를 하면 불같이 화를 내세요. TV 드라마에서 남편을 오빠로 부르는 장면이 나오면 난리가 나요. 성을 물을 때도 본관을 붙여서, 반남 박가입니다. 낮춰서 표현해야죠. 반남 박 씨입니다. 경주 이 씨입니다. 이렇게 답하는 사람은 아버지 기준으로는 무근본 집안 사람인 거죠. 그렇다고 아버지가 다른 나라의 예절이나, 규칙을 존중하시지는 않아요. 태국 한식 식당에서 물값 따로 받는 게 아버지 심기를 건드렸죠. 사장 나오라고 그래. 사장 누구야?
-서빙하는 사람 태국 사람이에요. 어차피 못 알아 들어요.
-내가 한국 식당에서 한국말을 한다는데, 못 알아듣는 걸 어쩌라고?
아버지의 신선한 무논리에 깜짝 놀랐어요. 획기적이기까지 하지 않나요? 호칭이나 예법에 누구보다 철저하시지만, 그런 호칭이나 예법으로 세상이 더 좋아지는 것까지는 관심이 없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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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닦아, 걸레로 닦지 말고오오
군대 청소 시간이었어요. 저는 선임 전투화 담당이었어요. 미싱 하우스 담당(물걸레로 바닥을 훔치는 걸 그렇게 불렀어요) 일병이 화를 내더라고요. 방금 닦은 부분을 제가 발로 밟았대요. 화들짝 놀라서, 걸레를 찾았죠.
-손으로 닦아.
-걸레로 닦겠습니다.
-손으로 닦으라고.
-걸레로
번개가 이렇게 보이는 거구나. 맞으면 눈에서 번쩍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주먹이 정통으로 제 볼에 꽂혔으니까요. 일병이지만 저보다 넉 달 먼저 온, 저보다 한 살 어린 선임에게 지기 싫었어요. 지기 싫다기보다, 불합리한 지시에 굴복하기 싫었죠. 노려보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이었죠. 청소도 짜증 나 죽겠는데, 후임이 더럽혀 놓은 게 참을 수가 없었던 거죠. 그 선임은 예쁨 받는 후임이기도 했죠. 언제나 선임에게 깍듯했어요.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 아랫사람들에게 돌변하는 경우를 흔히 보죠. 이유가 뭘까요? 한 인간에게 '울화 총량'이란 게 있는데, 윗사람에게는 아부만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아랫사람에게 푸는 걸까요? 모욕을 주는 게 일상인 사람들은 불만족스러운 사람이죠. 억울해요. 분해요. 어떻게든 풀어야겠어요. 평소에 초조했던 거예요. 누가 제일 만만하겠어요? 가장 약해 보이거나, 아래 있는 사람에게 풀어야죠. 자신의 '울화 총량'을 그렇게 맞추는 거죠. 반대로 모욕적인 태도에 거부감을 갖고, 본인부터 그런 태도를 삼가는 사람은 분노를 현명하게 잘 배출하는 사람이죠. 빨리 잊든, 재미난 동영상을 보든, 명상을 하든요.
모욕감을 주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법이니까요.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단은 승자예요. 평상시 삶의 질이 좋은 거죠.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상대가 공격적인 거라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거 아니냐고요? 모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불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기술은, 자신의 책임이죠. 자신의 능력이죠. 모욕을 합리화하지 마세요. 정당성을 찾지 마세요. 모욕이란 게 적정선에서 가라앉지를 않아요. 더욱 독해지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니까요.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 중 가장 저질이 '약자 공격'이란 거 아시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하나쯤은 성실하게,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그게 저에겐 글이에요. 작은 자부심으로 매일 매일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