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진, 너무도 사소한 순간들

그러니까 삶이 여행 아니겠습니까?

by 박민우
태국 북동부 난, 그중에서도 뿌아


애석하게도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는 기억에 없어요. 형보다는 훨씬 쉽게, 적당한 무게의 아이로 나왔다고 해요. 머리통이 가로로 긴데도, 제왕절개 없이 낳아 주셨어요. 감사하죠.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1. 택시 밑에 물고기가 없다고?


택시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어요. 다섯 살 때쯤이었나요?


-요 밑에는 물고기가 살아.


어머니는 다리 밑, 그러니까 한강을 의미하신 거죠. 저는 택시로 알아 들었어요. 그래서 택시 본체와 바퀴 사이에는 어항이 있다고 믿었죠. 물고기가 왜 있어야 하는지까지는 생각 못 했고요. 모든 택시가 물고기와 함께 구르는 줄 알았죠. 택시에 물고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까지 십 년이 걸렸어요. 투철하게 왜 물고기가 택시에 있어야 하나 고민한 건 아니지만, 오랜 시간 택시를 미니 수족관으로 알고 살았다는 건 약간 억울하네요.


2. 수중에서 숨 쉬고, 눈 뜨는 건 개나 소나 다 하는 거 아니었나요?


어릴 때 미국 TV 시리즈 <타잔>을 보면 타잔이 물에서 눈 뜨고 수영하더라고요. 보아뱀과 결투를 벌이는 걸 보니, 수중에서 숨까지 쉬는 게 분명했죠. 그 오랜 시간 숨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목욕탕에서 타잔이 되기로 결심해요. 주저하지도 않았어요. 입수하자마자 눈을 번쩍 떴죠. 눈이 너무 쓰라린 거예요. 1차로 당황했죠. 입을 벌리고, 힘차게 숨을 들이쉬었어요. 원한 건 공기였는데, 목욕탕 땟국물이 죄다 목구멍으로 쳐들어 오지 뭡니까? 그런 충격은 살다 살다 처음이었네요. 손을 벌벌 떨면서 난간에 기대서 가쁜 숨을 몰아 쉬었죠.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그래도 목욕탕 아저씨들은 평온하기만 하더군요. 타잔은 아이들에게 보여줘서는 절대로 안 되는 유해 방송이었어요.


3. 우산만 있으면, 장시간 공중에 떠 있는 거 아니었나요?


메리 포핀스 여사가 우산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보면서 확신했죠. 우산만 있으면 된다. 정말 우산만 있으면 되더군요.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 기억 나시죠? 집집마다 담벼락에 붙어 있었잖아요. 쓰레기통에서 착지할 때까지, 우산의 도움이 컸어요. 나비처럼 가뿐히 내려앉았죠. 효과를 입증하고 나서 장독대에서 뛰어내렸거든요. 머리통부터 발목까지 으스러지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뼈에 금이 가지는 않았어요. 그나마 무사했던 건 우산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우산은 뒤집어져 있더라고요. 장독대 다음엔 건물 2층에서 뛰어내릴 생각이었어요. 우산은 장독대까지 만이다. 메리 포핀스 우산은 국산이 아니란 걸 그때 깨달았어요. 국산 저질 우산으로는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4. 라디오 DJ는 엎드려서 고문받듯이 방송하는 줄 알았어요


라디오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입만 놀리는 건데, 굳이 큰 공간이 필요할 리가 없잖아요. 제가 생각했던 라디오 스튜디오는 납작한 상자였어요. 겨우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상자요. 그곳에서 엎드려서 마이크에 대고 조잘조잘 입만 놀리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DJ들이 늘 불쌍했어요. 저렇게 컴컴하고, 어두운 곳에서 참 오래도 떠드는구나. 노래도 레코드 판을 틀어준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수들이 상자에 기어 들어가서, 똑같이 불쌍해져서 노래를 한다고 생각했죠.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이 '싱글벙글 쇼'가 뭔가요? 사람들 참 못됐죠? 닭장에 가둬 놓고서, 싱글벙글이 나오냐고요? 북한 아오지 탄광 같은 곳에서 일을 시키면서 제목은 싱글벙글 쇼라니요? DJ들이 웃긴 얘기를 해도 저는 웃지 않았어요. 위선이라는 걸 어렴풋이 라디오를 통해 이해했다니까요. 실제로 라디오 부스를 본 건 성인이 된 후였죠. 아니구나. 그러고 말았어요. 아이 때 상상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건 아니었는지,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고요. 게스트로 출연하는 자리여서 말실수가 더 신경 쓰였으니까요.


5. 종로에서 을지로를 걸어서 간다고요? 거짓말


고등학교 때까지는 집, 도서관, 학교 정도밖에 몰랐어요. 모범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가능성 자체를 몰랐으니까요. 고등학교가 혜화동(경신 고등학교)에 있었는데도, 마로니에 공원을 한 번도 못 가 봤다니까요. 지하철 역 하나의 거리가 엄청 먼 줄 알았어요. 대학생이 되고 종로에서 을지로, 충무로를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요. 인간은 못할 게 없겠구나. 어이없게 들리시겠지만,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을지로에서 종로를 걷는 순간 확신해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거리를 이렇게 우습게 관통하다니. 걸어서 지구 한 바퀴도 불가능하지 않겠구나. 겁대가리를 잠시 상실했는데, 군대에서 행군하다 후송차에 실리면서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와요.


6. 최초로 바다를 본 날, 이 어이없는 끝없음은 뭔가요?


저는 바다를 고등학교 때 처음 봤어요. 학교에서 가는 여름 캠프였죠. 시야를 모두 물로 채우는 경험이 처음이라서요. 감동보다는 충격이었어요. 진짜로 끝이 없네. 보이는 곳 너머에도 물만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거대해서 입이 안 다물어지더라고요. 서울에서 인천만 가도 볼 수 있는 게 바다였는데, 그런 바다를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본다는 게 재밌지 않나요? 우주에서 지구라는 푸른 별을 볼 때의 감동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 어떤 짐작도 허락하지 않는 시각적 충격이겠죠? 고등학생이 되어서 바다를 볼 수 있었다는 게 돌이켜 보니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평생 어마어마한 놀라움은 사실 몇 번 없는 거니까요.

7. 카레에 돼지고기를 넣어 먹는 게 그리 이상한가요?


와, 두 명이 우기니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우리 집은 무조건 돼지고기였어요. 오뚜기 카레에 소고기가 말이나 되나요? 소고기 카레는 한 번도 못 먹어 봤어요. 사회생활을 할 때니까 서른이 훌쩍 넘어서였는데, 후배 놈과 동기가 카레는 소고기 카레뿐이라는 거예요. 돼지고기 카레도 있냐면서 놀라더군요. 제가 열이 뻗쳐서 네이버 지식인 검색까지 하다가 현타가 와요. 이걸 왜 우리나라에 묻고 있냐고요? 카레가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인도죠? 소고기 안 먹는 인도인들 음식에 소고기가 기본 값이라고 우긴 거잖아요. 우리나라 카레는 일본 카레에서 왔다고요? 일본 카레에 돼지고기가 안 들어가냐고요? 소고기, 닭고기 두루 쓰이기는 하지만요. 그 놈년들이 어찌나 몰아세우던지, 전 정말 돼지고기 카레가 혐오 음식인 줄 알았다니까요. 셋 중 둘이 우기면, 사실 세상 모든 가치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져요. 허무하기도 하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이 주는 소소한 재미와 힘을 믿어요. 언제부터인가 드라마틱하고, 웅장한 글보다 작은 글에 더 정이 가더라고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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