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영감을 준 사람들

세상엔 이런 사람들도 있답니다

by 박민우


페루까지 가서 마추픽추를 안 봐? 일본 친구 카즈마


남미 여행에서 마추픽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멕시코부터 시작해서 중남미를 다 돌고, 페루에서 아웃을 하면서 마추픽추를 안 보다뇨? 제 오랜 여행 친구 카즈마가 그랬다니까요. 이유는 돈이 다 떨어져서래요. 저와 여행하다 중간에 찢어졌는데, 설마 마추픽추를 안 보고 돌아갈 줄이야. 집도 잘 살아요. 잘 살아도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 하기 싫을 수도 있죠. 저라면 어떻게든 봤어요. 그렇잖아요. 코앞에 마추픽추를 어찌 포기하냐고요? 남미가 쉽게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요. 평소에도 여행 짐을 싸놓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프로 여행러라 더욱 놀라웠죠. 포기도 용기죠. 열정을 다해 여행을 하지만, 궁극의 목표 앞에서도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어찌 보면 대단하지 않나요? 제가 인도에서 타지마할을 안 간 건 다른 경우죠. 꼭 안 봐야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니까요. 도떼기시장처럼 바글바글한 곳에서, 건축물 하나 보겠다고 진을 빼고 싶지 않았어요. 써놓고 보니까 제가 더 똘아이인 것도 같네요.


채식 주의자가 햄버거를 팔아?


그냥 햄버거집도 아니고요. 맛집이었어요. 인도 다르질링에서 소문난 햄버거집 사장이 채식주의자더라고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단 한 번도 입에 대지 않는 사장이 믿기세요? 먹어본 사람들의 온갖 극찬이 쏟아져요. 저도 먹어 봤는데, 소고기 패티가 묵직한 정통 수제 햄버거더라고요. 무한한 우주만 신비로운 게 아니더라고요. 또 다른 한국 식당 사장도 한국 한 번 가본 적 없어요. 한국 안 가 봐도 한식당 차릴 수야 있죠. 우리나라 중국집 사장 중에 중국집 가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이 인도 주인은 한국말까지 능숙해요.


-나한테도 다시다만 있어 봐요. 몰라서 못 만드는 게 아니에요.


남인도 함피에서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소름이 돋더라고요. 이런 엄청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인데, 타지마할이 눈에 들어오겠어요?


일주일에 7일, 강철 체력 가이드


아르메니아에서 투어를 했어요. 아침 일곱 시 반에 모여서, 저녁 열 시에 끝나는 투어였죠. 가이드가 여자였는데, 그렇게 생기발랄할 수가 없어요.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노래방 타임까지 있더군요. 한국 관광버스에 온 줄 알았다니까요. 저도 강남 스타일로 나름 국위 선양을 했죠. 가이드 아가씨가 한국말도 조금 하더군요. 일주일에 쉬는 날이 단 하루도 없대요. 6개월 이상을 그렇게 살았대요. 어서 빨리 돌아가서 쉬었으면. 그런 표정이 전혀 안 드러나는 거예요. 누가 보면 관광객인 줄 알겠더라니까요. 손님들 노래하면 손뼉 치고, 같이 노래하고, 승객들이 지쳐서 잠이 들면 깨어 있는 사람들끼리 또 하하호호. 체력도 체력이지만, 돈 받는 일은 남의 일. 이런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보이더군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렇게도 될 수 있나? 아뇨. 저는 저렇게 못 살아요. 내 공간에서 충전도 좀 해야, 바깥에서도 신이 날 수 있다고 믿어요. 집에서는 잠만 잘 뿐이고, 종일 일에 치여 사는데도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 나올 수가 있나 봐요. 부러운 열정이기는 했어요.


천하의 싸가지, 서양인 친구


어느 나라라고까지는 하지 않을게요. 외국인 친구였는데, 좋은 집안에 명문대 출신이었죠. 백인 가문의 전형적인 상류층. 한국에서 교환 학생으로 있다가, 한국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서, 한국 대기업으로 옮겼더라고요. 점심을 같이 먹을 일이 있었어요. 3년 만의 만남이었나? 그랬을 거예요.


-돼지 같은 새끼들, 월급 도둑들, 버러지 같은 게으름뱅이들.


한국말로 또박또박 부하 직원들 험담을 하더라고요. 회사 다니다 보면 험담도 할 수 있죠. 그런데 논리가 딱 아랫것들은 갈궈야 한다. 잘해줄 필요 없다. 노예근성 한국인들. 이런 식인 거예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악덕 고용주처럼 굴더군요. 이런 사람이 현실에도 있나? 하긴 런던에서 만난 이탈리아 놈이 아프리카 여자를 보더니, 진짜 원숭이 같다며 낄낄대더군요. 입으로 나오면 안 되는 말들이 나올 정도면, 얼마나 자주 저런 말들을 지껄였다는 걸까? 조금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사실은 비현실적인 게 아니란 생각을 했네요. 그 두 놈을 보면서요.


저 상황에서도 감정 컨트롤이 가능하다니. 지재우 카메라 감독님


저랑은 세계 테마 기행 콜롬비아 편이 인연이었어요. 여행 다큐만 하시는 게 아니라, 드라마, 영화(워낭 소리), 다큐멘터리를 종횡무진하는 카메라 감독님이셨어요. 홍대에서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찍고 계셨는데, 마침 저도 홍대여서 인사라도 드릴까 기웃거렸죠.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눈이라도 마주칠까 애를 태우는데


-민우야


감독님이 저를 알아보고 큰 소리로 불러 주시는 거예요. 자전거 신을 찍는 구혜선부터 모든 스태프들이 저를 보더군요. 진짜 대단한 사람인가 봐. 존경 가득 눈빛으로 저를 보던데요? 이럴 때 우쭐해져도 되는 거죠? 말이 좀 샜는데, 현장 사람들이 그렇게들 따르더라고요. 드라마 제작 현장이 피를 말리잖아요. 잠도 못 자면서 이틀간 촬영을 할 때도 있고요. 그 와중에도 배우나, 스태프들의 고민 상담소 역할을 하시더라고요. 저랑 콜롬비아 편 찍을 때도, 날아다니셨어요. 정글 트레킹을 하면 카메라는 두 배 더 힘들어요. 출연자는 걷기만 하면 되죠. 그런 출연자를 가까이서도 찍고, 멀리서도 찍고, 뒤에서도 찍고, 앞에서도 찍어야 해요. 그 무거운 장비를 들고, 작은 산을 뛰어 올라가시더군요. 저를 멀리서 풍경과 섞어서 찍으시려고요. 지금이야 드론 카메라가 있지만, 그땐 소니 투포환 급 카메라가 전부였어요. 갓 입문한 스무 살처럼 열심히 뛰어다니시더군요. 방송이 처음인 제가 주제넘은 소리를 해도 다 경청해 주시고, 인상 한 번 안 쓰면서 제작진 요구도 다 들어주시고요. 그 분야에서 최고인 사람인 걸 나중에야 알았다니까요. 너무 겸손하고, 선하셔서요. 최고가 되려면 독해지고, 못 돼야 한다. 그런 편견이 지 감독님을 보면서 깨졌어요. 진짜 최고는, 덕까지 갖춘 사람이란 걸 그때 알았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힘들면 힘들어서 쓰고, 행복하면 흥으로 써요. 제 모든 것이 드러날 수 있는 글이기를 바라요. 제가 투명해져서, 제 안의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글이 궁극의 목표예요. 이룰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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