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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Oct 19. 2020

방탈출 게임보다 더 재미난 방찾기 게임(여행은 숙소다)

방만 좋으면 안 돌아다녀도 좋아요 

젊을 때는 무조건 도미토리에서 잤죠. 돈이 없는 게 큰 이유였지만, 재밌기도 했으니까요.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요리도 해 먹고, 클럽도 가고요. 다른 나라 말을 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는 게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어요. 서른 개 침대를 다닥다닥 붙여 놓은 과테말라 숙소가 기억에 남아요. 보통은 2층 침대를 띄엄띄엄 놓거든요. 죄다 1층 침대인 거예요. 나름 장관이더군요. 매트리스는 축축하고, 장기 체류자들의 짐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죠. 다이치라는 일본인 친구가 도저히 못 자겠다는 거예요. 왜, 왜, 왜 못 잔다는 걸까요? 이런 전투력 부족한 새끼를 봤나요? 여기서 자는 애들은 태어날 때부터 거지였나요? 나름 귀한 아들, 딸들이 닥치고 자는데 뭐가 불만일까요? 다이치는 그날 술을 일부러 사서 마시더군요. 맨 정신으로는 못 자겠다고요. 왼쪽으로 누워도, 오른쪽으로 누워도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 끔찍했던 거죠. 다이치가 눈 앞의 악몽에 괴로워하는 동안, 저는 그나마 나은 걸 찾아내려고 빈 매트리스를 꾹꾹 누르고 다녔네요. 제가, 이렇게나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도미토리가 불편합니다. 특히 나이 물어볼 때요. 분명 늙은 것 같은데, 또 동양인이라 헷갈리기도 하고, 그래서 서양 사람들도 못 참고 제 나이를 묻더군요. 분위기가 갑자기 돌변해요. 자기 아버지 나이인 줄 몰랐다고요. 아니 아버지 나이가 도미토리에 묵으면 안 되나요? 아이들이 말이 없어지고, 눈치 보고, 자기네들끼리 밥 먹으러 가고. 정말 서럽다니까요. 같이 밥 먹으러 가도 불편해요. 나이까지 들키고 나면 더치 페이가 편하겠어요? 아, 불편해도 더치 페이합니다. 제가 이토록 강한 사람입니다. 가끔은 아들 뻘들에게 얻어도 먹습니다. 


짧게 여행할 때는 저도 잠자리에 돈을 써요. 잠이 여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더라고요. 평점만 믿고 갔다가 망한 적이 많아요. 특히 창문 없는 방이요. 창문 없는 방은 여러분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셔야 해요. 아무리 평점이 좋다고 해도 창문 없는 방이 정말 괜찮나요? 안 답답하세요? 개인적인 취향일 뿐인가요? 어머니랑 이모님 모시고 타이베이 갔을 때도 방에 창문이 없었어요. 방이야 깨끗했죠. 창살 없는 감옥이더라고요. 나중에 밝고,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기고 나니까 얼마나 좋아들 하시던지요. 아이처럼 해맑아져서 콧노래를 다 부르시더라고요. 제가 폐소 공포증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창문은 무조건 있어야 해요. 창문만 있고, 벽으로 가로막힌 방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죠. 중급 이상의 방을 고르는 기준은 단연 '전망'이에요. 청소나 시설은 평점이 나쁘지 않은 이상 기본은 하더라고요. 


온수도 아주 중요하죠. 특이 여성분들은 수온이 뜨거워야 하잖아요. 수압보다도 수온이 어쩌면 더 중요할 거예요. 동남아시아는 물이 미지근한 곳이 많아요. 피로를 뜨거운 샤워로 풀려고 생각했다면 미지근한 물이 여간 실망스럽지 않으실 거예요. 후기를 꼼꼼히 보시고 뜨거운 물을 확인하세요. 여행 중 반신욕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숙소에서 벌레가 나오는 거에 다들 정 떨어지시죠? 저는 태국에 오래 살아서 그 정도는 아니에요. 한국에선 바퀴 벌레는 아예 구경도 못하고 살았죠. 분무기로 소독해 주고들 가시잖아요. 그래서인지 혐오 곤충은 웬만해서는 볼 수가 없어요. 태국은 길바닥에서 손가락 크기 바퀴벌레를 언제든 볼 수 있는 나라라서요. 그런 거에 매번 끔찍해하다가는 제 명에 못 살죠. 우리나라보다 방충 작업이 훨씬 어려운 나라이기도하죠. 우리나라 투숙객은 개미만 나와도 방을 바꿔달라고 난리더라고요. 전 개미 정도는 끄떡없어요. 아, 그리고 찡쪽. 손가락 크기의 도마뱀 있죠? 처음 보면 기절하실 거예요. 기절하지 마시고, 반가워하세요. 찡쪽이 많으면 벌레가 없어요. 처음부터 정이 들 수야 없겠지만, 저는 찡쪽 몇 마리 사 오고 싶을 정도예요. 얼굴도 볼수록 귀엽고, 벌레의 천적이기도 해서요. 동남아시아 방갈로에서 앙증맞은 도마뱀 보시면, 아, 이방에서 바퀴벌레 볼 일은 없겠구나. 안심하셔도 좋아요. 


이제 저의 여행은 숙소와 먹는 걸로 좁혀지고 있어요. 저렴한 숙소는 저렴한 대로, 비싼 숙소는 비싼 대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죠. 한국은 뭐든지 빨리 발전시키는 나라라서요. 핫한 숙소들은 굉장할 거예요. 울릉도에 1박에 천만 원 호텔도 있다면서요? 예전 같으면 돈지랄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지금은 돈만 많다면 얼마든지 묵고 싶어요. 잠자는 공간에 돈을 쓰는 건 낭비가 아니란 생각을 해요. 코로나로 발이 묶인 요즘, 저는 세계의 호텔과 에어비엔비를 보면서 여행 꿈을 꿔요. 언젠가 그곳에서 꼭 자 봐야지. 그런 꿈이라도 꿔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서요. 이루어질 꿈임을 믿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세상을 보는 저의 눈이 덜 늙기 위해서, 덜 퇴화하기 위해서 써요. 매일 더 젊어지고 있다는 주문을 곁들여서요. 생각이라도 그렇게 하면서 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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