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레드벨벳 아이린으로 커뮤니티마다 화제더군요. 전 잡지사 에디터이자 스타일리스트가 아이린의 언행에 모욕감을 느끼고 폭로를 했죠. 아이린이 즉시 사과를 한 걸로 봐서, 부적절한 언행은 사실로 보여요. 저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분노부터 했죠. 나이도 어린 게 연예인 병에 단단히 걸렸군. 저도 잡지사에서 일을 했으니, 감정이입은 훨씬 더 깊고 빨랐어요. 예전에 조선일보 손녀가 할아버지 뻘 운전기사에게 막말했던 거 기억하시죠? 모두가 분노했잖아요.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구나. 그런데 알고 지내는 누나는 차분한 거예요. 어릴 때부터 부유하게 자란 누나는 친구들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어릴 때 운전기사나 가정 도우미 흉을 보는 게 일상이었대요. 조선일보 손녀가 심하긴 했지만, 비슷한 일이 드물지 않았다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이 게거품을 물 때, 어딘가에선 왜 이리 시끄러워? 별 일도 아니고만. 이러고 있을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거죠. 우리는 모두 자신의 위치에 쉽게 지배받아요.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해마다 이화여대 캠퍼스에 난입해서 학교 축제를 방해하는 게 고려대 학생의 전통이었어요. 짓궂은 장난 정도로 여겼죠. 만약 제가 여자고, 여대생이었다면 그랬을까요? 남성 중심의 사고로 여성을 희롱하는 몰지각한 행위로 보지 않았을까요? 제가 고대생만 아니었어도, 촌스럽고, 반문명적인 행위가 결코 좋게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학교 안에서는 그 행위가 단지 재밌고, 전통이라니까 계속해야 될 것처럼 느껴져요. 누가 딱히 교육을 시킨 게 아니어도요. 그 집단 안으로 들어가면, 절대 객관적인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종교, 지역, 성별, 학교에 따라 다양한 그룹에서 다양한 편견에 버무려져 있는 반죽 같은 존재죠.
학벌 철폐를 강력히 주장하는 명문대생은 소수죠. 그 소수조차 지식으로 스스로를 깨우친 거지, 억울하고, 분해서 학벌주의 폐지를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의대생 파업을 보는 시각도 의사와 보통 사람이 얼마나 다르던가요? 의사 친구들을 보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이 분노한대요. 세상 가장 억울한 사람은 의사래요. 전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떻게 의사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까요? 대신 각 직업은 각자의 억울함이 한가득이죠. 그걸 또 의사들은 몰라요. 가난한 환자가 왔다고, 수술비를 깎아주지는 않잖아요. 우리가 연예인이었다면 아이린을 조금은 이해하려고 애를 썼겠죠. 비난을 하더라도 전후 사정은 알고 비난하자. 최대한 중립적이려고 애썼을 거예요. 대부분은 연예인과 아무 상관이 없으니, 마음 놓고 까는 거죠. 아이린의 행위에 대해서 변호할 마음은 없어요. 누군가에게 모욕감을 줬다면, 평생 남을 상처를 줬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시련도 본인 몫이죠. 하지만 우리들이 누군가를 비난하는 태도는 돌아봐야 해요.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난도질당할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 우리의 앞뒤 상황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아예 없는 세상도 슬프지 않나요? 우린 어딘가에 속해 있기 때문에 매우 매우 편향된 인간입니다. 부족하고, 치우친 생각을 훨씬 잘하는 생명체예요. 누구를 비난하세요. 하지만 스스로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할 때, 그 비난은 훨씬 더 다듬어질 거예요. 그 '다듬음'은 우리에게 보험으로 돌아올 거예요. 우리를 지키기 위해, 세상의 불특정 다수도 조금은 덜 가혹하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친구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주 많은 사람이었어요. 더 많은 사람과 글로 친해지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잘 오셨어요. 또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