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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독거 노총각'을 보고 일이 손에 안 잡혀요

진성성의 힘, 나에게는 없는 용기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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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는 하지만 구독자 418명 꼬꼬마 유튜버예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굿모닝 영상을 합쳐서 올리는 게 전부죠. 자막 없어요. 썸네일(동영상의 표지) 없어요. 후다닥 올리는 패스트푸드 같은 영상이죠. 그런 생각은 해요. 각 잡고 하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 대충 만들어서 내보낼 수는 없다. 같잖은 자의식으로 게으름을 합리화하고 있죠. 진짜 영상은 아직 못 올리고 있다는 얘기죠. 내 몰골이 어떻지? 내 말투는? 편집이 너무 조잡하지 않나? 능력도 없으면서 완벽하고 싶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 버려요.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어. 이런 태도가 유튜브 발전을 막고 있어요. 태국어도 같은 이유로, 손을 놓고 있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너는 안 돼. 이런 위기감도 필요할 때가 있어요.


'독거 노총각'이란 유튜브가 화제더군요. 구독자가 5만 명을 넘겼어요. 저에게야 어마어마한 숫자지만, 수십만 유튜버도 잘 모르는 세상인데요. 5만 명 숫자만 보면, 대단한 뉴스감은 아니죠. 같은 노총각으로 동병상련을 느껴야 하는데, 전혀 다른 이유로 빨려 들어가더군요. 천사들만 댓글을 다나 봐요. 화 난 사람만 댓글 다는 세상 아니었나요? '독거 노총각' 댓글 한 번 봐 보세요. 식단이 부실하다며, 이상한 여자가 꼬이면 안 된다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영상 올려 달라며 독거 노총각을 응원해요. 좋게만 보이지는 않더군요. 누가 봐도 확실히 딱한 사람에게는 일방적으로 자비로워서요. 그가 어떤 실수를 해도 다 덮어주고, 용서할 수 있는 사람뿐이더군요. 개와 고양이, 3천만 원 아파트 46세 노총각의 공통점은 해치지 않는다는 거죠. 개와 고양이를 예뻐하지만, 우린 개나 고양이가 되고 싶지 않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잘 보이려 애쓰지도 않아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대해도, 부작용이 없어요. 독거 노총각에게 쏠린 따뜻함에도 그런 일방적인 사고가 보여요. 각박한 지적질의 세상에서, 그런 온기라도 없는 것보다야 낫죠.


이 남자는 솔직함이 선을 넘었더군요. 저도 나름 치부를 드러내면서 글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감히 비벼볼 수도 없어요. 꼭 벼룩시장을 깔고, 밥을 먹더군요. 도배 하나요? 이사 가나요? 그런 이유 없이도, 벼룩시장을 항상 쓰는 사람이더군요. 락앤락에 담긴 밑반찬이 등장해요. 간식으로는 빵과 우유를 좋아하고, 과일은 챙겨 먹더군요. 채소는 김밥 안에 있는 시금치, 단무지로 보충하고요. 머리숱이 별로 없고, 옷도 플리스 위주예요.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이루 말할 수 없이 칙칙해요. 락앤락 반찬을 보여줄 거면, 정리라도 하든가요. 다 먹고 김치 국물만 남은 락앤락을 왜 보여 줄까요? 고통스럽기까지 하더라고요. 청소 안 된 방에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들이닥친 기분이 들어요. 화제라니까 참고 봐요. 보다 보면, 계속 보게 돼요. 자막 맞춤법은 자주 틀리지만, 목소리도 들렸다, 안 들렸다 하지만 보게 돼요. 그의 한 끼가, 방구석 일상이 쉽게 만들어진 게 아니더군요. 누추하더라도, 늘 먹는 밥과 반찬이어도 짧게, 짧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요. 군더더기가 없어요. 여자가 없는 삶은 불행하지 않드아. 이 말을 자주 반복하면서 자신이 불행하지 않지 않음을 강조해요. 김밥을 먹는드아. 김밥은 존재한드아. 존재하지 않는드아. 이런 내레이션이 이어져요. 엉성한 것 같지만, 곱씹게 되는 말들이죠. 말투도, 외모도 번지르르하지 않지만, 진정성은 따라갈 수 없어요. 저는 늘 제가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했어요. 그는 어떻게 보일까가 아니라, 모든 걸 보여 줘야 한다. 자신을 놓은 것도 같고, 불구덩이에 던진 것도 같아요. 모든 장면에서 힘이 넘쳐요. 맨 얼굴의 힘.


보세요. 완벽하지 않아서, 더 열광해요. 세상은 완벽함만을 요구하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가 그렇다고 믿는 것뿐이죠. 스스로가 기준을 정해놓고, 갇혀서는 힘겨워하죠. 어떻게 보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걸 보여줄 것인가? 좋은 유튜버가 되려면, 질문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구독은 차마 못 누르겠더군요.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 보고 싶지 않기도 해요. 독거 노총각은 좋은 사람이다. 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더군요. 고령화 시대, 비혼 주의 시대에 랜선 친구들이 여생을 책임져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봐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떻게 매일 글을 쓰냐고요? 삶이 길지 않다고 확신하니까요. 삶이 길다고 생각하면, 매일 글 못 써요. 가혹하니까요. 우리의 삶이 짧고, 짧으니 매일의 글쓰기도 끝나는 날이 와요. 짧은 고생은 할만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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