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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펑펑 울렸던 영화 '빌리 엘리어트'

감동할 수 있는 나이는 따로 있는 걸까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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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포함되어 있어요.


이 영화를 어떻게 보게 됐더라? 가물가물해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맞닥뜨린 영화였을 거예요. 영화 보고 잘 우시나요? 전 잘 울어요. 대놓고 울리는 영화도 기꺼이 울어줘요. '선생 김봉두' '킹콩을 들다' 최진실 주연의 '편지' 보면서 울었어요. 창피한 줄도 모르고 극장에서 통곡을 했어요. '서편제', '똥파리', '말아톤'도 머리 아프게 울었던 영화예요. 좀 덜 울려야 오래 남더라고요. 예를 들면 '8월의 크리스마스', '러브 레터', '첨밀밀' 같은 경우엔 펑펑까지는 아니었어요. 뻐근한 감정이 내내 지속되면서, 오래오래 잔향이 남더라고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마지막에 눈물샘이 터지긴 했지만, 뻐근한 영화였어요.


울리는 영화를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 많더군요. 저는 우는 거 좋아해요. 이유가 좀 웃긴데, 해독이 되는 것 같아서요. 울고 나면 개운하더군요. 노폐물도 눈물에 그렇게 쓸려 나가지 않을까요? 그렇게 뜨거운 수분이, 내 안에서 총출동하는 것도 좀 신기해요. 이젠 눈물이 잘 안 나와요. 어떤 영화를 봐도요. 아, 그렇구나. 음, 그럴 줄 알았어. 감동도 다 때가 있나 봐요. 반복되는 클리셰(자주 사용되는 이야기 구성이나 장치)에 점점 감정이 메말라 가더군요. 먹은 나이만큼, 본 영화가 많아지니까요.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예요. 광산 파업은 1984년 영국을 뒤흔들었던 역사이기도 하죠. 그때 상황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시작돼요. 채산성이 떨어진 탄광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정부에 맞서 전국 탄광 노조가 들고 일어선 거죠.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의 아빠와 형도 파업에 동참해요. 버는 사람이 없으니 가세는 점점 기울죠. 나중엔 어머니 유품인 피아노까지 땔감으로 쓸 정도로요. 그래도 아빠는 아들에게 권투를 가르쳐요. 사내다운 남자로 키우고 싶었던 거죠. 권투에 소질이 없는 아들 빌리는, 발레에 빠져 들어요. 결국 들키고, 아버지는 노발대발.


제가 펑펑 울었던 장면은, 아버지가 파업을 접고 광산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어요. 같이 파업하던 큰 아들 토니는 어이가 없죠. 파업에 미지근한 동료들을 비판하고, 위협하던 강성 중의 강성인 토니의 아버지가 배신을 하겠다는데요. 가문의 수치죠.


-빌리를 위한 거야. 빌리는 발레 천재인지도 몰라.

-미안하다, 토니.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말리는 큰 아들 토니에게,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울음보를 터뜨려요. 수입 석탄이 이미 반값이에요. 정부 지원으로 어찌어찌 유지했지만, 폐쇄가 답이란 건 본인들도 알죠. 하지만 영국에서 광산 노조가 어떤 곳인가요? 정권을 만들 수도, 몰락시킬 수도 있는 막강한 '힘' 아닌가요? 하지만 권력도 기울어 가는 석탄 산업 앞에선 어쩔 수가 없어요. 명분보다, 의리보다는 내 새끼가 먼저다. 내 새끼를 로열 발레학교에 합격시켜야 한다. 발레를 반대하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파업 현장에서 이탈해요. 그가 저주하고, 욕했던 배신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요.


지금까지 제가 영화를 몇 편이나 봤을까요? 천 편은 안 되려나요? 어쨌든 제 영화 인생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이네요. 웃음 코드가 다르듯이, 울음 코드도 제각각이죠.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가 우스꽝 스럽게 걸으며 죽으러 가는 명장면이요. 그렇게 아들 조슈아와 영영 이별하는 장면에서 펑펑 울지는 않았어요. 올해가 가기 전에 펑펑 울만한 영화를 하나 찾아야겠어요. 나이를 먹어서 눈물이 마른 걸까요? 우리의 현실이 영화보다 각박하고, 서글퍼서 영화가 눈에 안 들어오는 걸까요? 눈물 영화가 그리운 날이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기록입니다. 별 거 없는 이야기예요. 어깨에 힘을 빼고, 비슷하게 심란하고, 비슷하게 소소한 이들과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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