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는 게 세상 쉬우면 노래하며 살 것

인사돌이 없는 당신은 닥치고 감사할 것

by 박민우
DSC09589.JPG

씹는 축복으로 시라도 쓸 수 있다. 윗니, 아랫니. 섬세하게, 쿵짝쿵짝. 씹고, 자르고, 삼킨다. 이게 쉬워졌다. 씹을 때마다 신경을 건드리는 고통이 없다. 감전된 듯한 통증은 혐오스럽다. 두렵고, 혐오스럽다. 사랑니도 눈엣 가시였다. 늘 음식이 끼었다. 다 썩어서 시원하게 뽑혀나갔다. 몇 년 전에 다른 치과에서 사랑니를 발치하라고 했다. 썩었다고 했다. 나는 불쾌했다. 누가 물어봤어욧? 스케일링만 하고 나왔다. 치과 의사가 까칠하기도 했다. 빼고 싶으면 빼든가. 꼭 빼야 하냐고 물었을 때, 뜨뜻미지근했다. 거짓말을 들킨 사람처럼.... 사랑니도 소중한 내 몸, 자연의 일부. 어떻게든 지켜내겠다. 그래서 이모양이 됐다. 치과의사는 진실을 말했고, 내가 좀 꼴 보기 싫었다. 나를 치통에서 구원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되묻고, 따지는 똑똑한 환자가 한둘이겠어? 내가 짜증 났겠지. 피곤했겠지.


치과 의사만 보면 부러운 사람, 손! 나는 아니다. 거의 뛰어다니더라. 간호사들이 세팅을 끝내면 여러 방을 돌며 환자들의 입을 헤집는다. 마취 주사를 놓고, 치아를 갈고, 빼고, 넣고, 박는다. 모두가 토끼 같은 환자들. 눈은 똥그랗게 뜨고, 입에서는 침이 질질. 턱 주위는 벌벌벌. 아이는 아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더 많이 떨고, 발작한다. 안심도 시켜야 하지, 실수도 없어야지. 거기다가 친절까지 해야 해서, 의사가 자본주의 미소로 애 앞에서 재롱까지 떨더라.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둘도 없는 맏사위가 되어야 한다. 의료사고는 늘 곁에 있다. 인간이니까, 늘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못 한다. 죽어도 못한다. 공부는 안 해도 되고 그냥 의사 가운만 입혀준다면 피부과 의사 정도? 그것도 내가 모르는 고충이 어마어마하다면, 안 하겠다. 고등학교, 대학교 내내 공부만 하고, 의사가 됐다. 쉬운 하루가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 많이 벌어야 한다. 나만 좀 깎아줬으면 좋겠다. 여러분들은 제발 깎지 마시오들.


치과 의사가 한숨을 쉰다. 신경치료가 뭐인지도 모른다. 설명을 해줬는데 이해가 안 된다. 아, 그렇지? 아니지? 간호사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잘못된 거 맞지? 다시 해야겠지? 이런 소리로 들린다. 의사의 한숨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몇 번 더 엑스레이를 찍는다. 침을 한 바가지 흘린다. 휴지로 턱 쪽만 막고, 꾸부정 자세로 엑스레이를 찍는다. 다시 단두대, 아니 진찰대에 누워서 입을 활짝 벌린다. 경련이 일지만, 찢어져라 벌린다. 하라는 대로 하기.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싫으면, 악어처럼 벌리고 부동자세로 침만 질질 흘려야 한다. 썩어서 도려낸 부위를 레진으로 벽을 쌓았다(그렇다니까 그런 줄 안다). 금이나 사기(지르코늄)로 채울 것이다. 아직은 신경 치료만. 금이 좋다니까 금으로 하겠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만났던 한 여인은 이가 온통 황금색이었다. 금니는 부의 상징. 키르기스스탄에선 멀쩡한 이도 뽑고, 번쩍번쩍 금니를 박는다. 나는 키르기스스탄 사람이 아니라서 내 안의 금니가 싫다. 당연히 인터넷 검색을 했다. 사기(지그코늄)와 금. 굉장한 차이는 아니지만, 금만 한 것이 없다. 10년 차 치과 간호사의 의견이었다. 아, 금니 싫다. 솔직히 늙어 보인다. 눈이 침침하고, 얼굴 가죽도 흐르고, 금니까지 박아야 한다. 정말 지팡이 없이 북한산을 다녀왔어? 이게 자랑인 나이도 곧 온다. 마음만 동안이라, 몸의 노화가 괘씸하다. 시간은 매년 두 배 정도 빨라진다. 60까지 13년 남았다. 체감 시간으로는 3, 4년이다. 3,4년 후엔 60살이 된다. 마흔 살로 보이는 친구를 질투하겠지. 그때도 바늘 달린 MTS를 굴리며 피 철철 얼굴을 휴지로 닦아낼까? 그럴 것이다. 죽기 전까지 늙지 말아야 한다. 죽음도, 늙음도 거부하다가, 마침내, 늙고, 마침내, 죽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설을 준비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