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할 줄 알았어요. 그게 되는군요.
매일 두 편의 글을 써요. 이렇게 모두에게 공개되는 글과, 유료로 쓰는 글요.
글을 못 쓸 바엔 죽음을 달라. 이런 사람도 세상에 있겠죠. 저는 그런 투철한 작가 아닙니다.
-일기를 팔아 보세요. 작가님이라면 누구보다 잘하실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어요. 이슬아 작가가 최초로 시도했죠. '일간 이슬아'라고 들어 보셨나요? 한 달 구독료 만 원을 받고, 매일 수필을 보내는 서비스죠.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처음엔 솔깃했죠. 솔깃하기만 했겠어요? 내 글을 사보는 사람이 있을까? 작가님 불쌍하니까 구독은 해드릴게요. 구걸로 보이면 어쩌지? 그때 즈음 큰 사건이 있었어요. 이태원에서 모처럼 친구들과 달리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잤어요. 다음날 아침 게스트 하우스 사장이 저를 깨우더군요.
-손님, 어제 일 기억하세요? 외국인 배낭에다가 소변을 보셨어요. 고래고래 소리까지 지르고.
제가요? 술 취하면 집으로 도망가 자기 바쁜 제가요? 누굴 웃기면 웃겼지, 남의 배낭에 오줌을 갈겨요? 화장실을 안 가고, 방에서 볼일을 봤다고요? 사실이라면 죽어야죠. 벌레만도 못한 인간 살아서 뭐하나요? 억울해하면 뭐하겠어요? 술 안 마신 사장이 거짓말하겠어요? 어떻게 숙소에 왔는지도 기억 못 하는 제가 밝힐 진실이 있나요? 평생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치욕의 날이었어요.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면서, 연락처를 남겨 놓으라더군요. 제가 알아서 다시 전화했죠. 그 친구는 어떻게 됐는지, 배상할 방법은 없는지 차분히 듣고 싶었어요. 전화 주겠다더군요. 그리고 연락이 없어요. 전화를 기다렸지만, 전화가 안 오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어요. 은근슬쩍 넘어가면 최고의 해피엔딩이니까요. 해피엔딩은 이루어졌어요. 유야무야 저는 용서받은 셈이죠. 저를 저주하거나 반성하는 걸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이 치욕감을 일기로 써야겠다. 이런 일기라면, 돈 받고 팔만하겠는데? 나의 치욕이, 누군가에게는 스승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고 욕 많이 먹었어요. 돈만 밝히는 글쟁이가 된 거죠. 가만히 있었으면, '훌륭한 작가님'으로 남았을 텐데, 돈 몇 푼에 자신을 판 근시안적 속물이래요. 그런 꾸짖음에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구독료가 안 아까운 글이 어떤 건지 보여주마. 저는 이를 악물고 써요. 구독료를 낼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잖아요. 대학생도 가난하고, 생활비만으로도 빠듯한 사람이 한둘이겠어요? 돈 낸 사람만 읽는다는 게, 어쩐지 짠한 거예요. 돈 없는 사람 마음은, 돈 없는 제가 가장 잘 알지 않겠어요? 그래서 두 편의 글을 쓰게 돼요. 처음엔 매일 한 편의 글도 어떻게 쓰나 막막했어요. 보세요. 두 편의 글도 이렇게 쓰면서 잘만 사네요. 의지의 화신이라고요? 성실함의 아이콘이라고요? 그런 사람 아니고요. 여지를 주지 않았어요. 안 쓰면 좀 어때? 그런 선택지는 저에게 없어요. 그게 그거 아닌가? 결국 대단한 의지의 화신인데? 짝짝짝. 그렇게 칭찬해 주시면, 넙죽 받겠습니다. 저 먹고살려고 시작한 일인데요, 뭐. 이삼십만 원 통장 잔고가 몇 만 원으로 떨어져 보세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그런 독기로 글 두 편을 왜 못 쓰나요? 이젠 그냥 제 하루가 글이 됐어요. 꿈꾸는 모습이었죠. 밥을 먹듯이, 입가심 믹스 커피를 마시듯이 글을 쓰니까요. 이렇게 되기까지 졸음과 싸우고, 게으름과 싸웠어요. 쉽지 않은 전투였죠. 내가 나를 이긴 건 아니고요. 먹고살기 위한 제가, 평상시의 저보다 조금 강해졌던 것뿐이에요. 가난이 힘이 됐어요. 위기가 쓰게 했어요. 그 위기가 없었다면, 저는 쓰지 않는 인간이었겠죠. 그래요. 바닥을 찍는 과정은 이렇게나 유용해요. 아예 다른 궤도로 이동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죠. 하지만 궤도에 진입하고 나면, 의외로 순조로워요. 가속도까지 붙죠. 매일 두 편의 글로 만족해서야 쓰겠어요? 이제 슬슬 유튜브에 손을 대보려 합니다. 저의 발버둥을 지켜봐 주셔서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영광입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아무리 잘 쓰려고 해도, 저일 수밖에 없어요. '척'하는 글은 쓰지 않으려고요. 착한 사람이고 싶어요. 잘 쓴 글 말고, 착한 글로 세상과 친구 먹고 싶어요. 날 선 세상에 윤활유 같은 글 광대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