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노래뿐이었으니까요
워크맨과 마이마이를 가지고 다니셨나요? 그때 들었던 음악이 최고였다고요? 그때는 음악이 종교였으니까요. 전부였으니까요. 음악세계, 핫뮤직, 지구촌 영상음악(GMV), 포토뮤직 잡지 기억하세요? 음악 이야기만 가득 담긴 잡지로도 돈이 됐어요. 음악 이야기만 있는 잡지를 사 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아니, 아주 많았죠. 가수와 그 노래가 탄생하기까지 뒷 야이기가 그렇게도 궁금했어요. 손바닥 크기의 '포켓 가요'란 것도 있었어요. 노래 악보가 깨알처럼 박힌 미니 교본이었죠. 악보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꾹꾹 눌러 노래를 불렀죠. 새삼 이런 가사였구나. 방구석에서 자기 목소리에 감동하며, 세상의 모든 노래를 따라 불렀어요. 피아노 좀 친다는 사람들은 악보를 사다가 그때의 노래들을 연주했죠. 인간은 이렇게도 위대하구나. 어떻게 TV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손끝으로 똑같이 칠 수 있을까?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는 국민 피아노곡이었죠. 집에 조지 윈스턴 앨범 한 장쯤은 있어야, 문화생활 좀 하는 집이었죠.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면 재빨리 녹음 버튼은 눌러야 했어요. 카세트에 녹음을 해둬야,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으니까요.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그렇게 자주 들리던 노래도 녹음만 하려고 하면 안 나와요. 저는 최신형 더블 데크 카세트 플레이어를 보유한 사람이었죠. 동시에 두 개의 테이프로 녹음이 가능한 시대가 열린 거예요. 천지가 개벽할 사건이죠. 녹음테이프로 연애하는 사람 많았어요. 자신의 인생 팝송을 테이프에 가득 담아서 선물로 주는 거죠. 들인 돈에 비해, 없어 보이지 않는 선물이었어요. 종이학이나 학알 보다 훨씬 대접받는 아이템이었죠.
워크맨이 세상에 나왔을 때 감격을 지금 친구들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음악을 걸으면서도 들을 수 있다니. 버스에서도 들을 수 있다니.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그 안의 스무 곡을 정성을 다해 들었어요. 너무 들으면 테이프가 늘어져요. 소리도 엿가락처럼 늘어나게 되죠. 그러면 냉장고 냉동칸에 넣어둬요. 신기하게 군기 바짝 든 새 것 같은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중학교 때 생일 선물로 LP판을 선물로 받았어요. 이것들은 다들 집에 턴테이블이 있나 봐요. 집에 턴테이블이 있어야 LP를 돌리죠. 너무 고맙다. 꼭 듣고 싶었던 거야.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연기했어요. 정색하고 우리 집에 전축 없어. 이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싸한 분위기가 됐을까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전축을 산 날 조심조심 까맣고 동그란 LP를 턴테이블에 올렸죠. 바늘이 LP 홈을 부드럽게 가르면서, 버터 같은 선율이 흘러나왔어요. 이렇게 갑자기 세상이 나긋해질 수도 있구나. 눈을 감고 초콜릿 같은 세상을 음미했죠.
사춘기 청소년들은 라디오를 끼고 살았어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으니까요. 주말이면 별밤 공개방송,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그렇게나 기다렸어요. 오프닝 음악이 나오면 심장이 벌렁벌렁. 이택림, 이수만, 이문세가 최고의 입담 게스트들이었죠. 불 끄고 자는 척하면서, 이불속에서 큭큭큭 웃음소리 숨기느라 애 좀 먹었죠. 우리는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좋은 음악을 달라. 이런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었어요.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였어요. 노랫말을 예쁘게 써서 코팅까지 하면 근사한 책받침이었죠. 달리기 할 때 듣고, 운전할 때 듣는 지금과 노래에 대한 대접 자체가 달랐죠. 리듬이나 비트가 중요시되는 요즘은 꼭 새겨들을 필요도 없어요. 몸으로 느끼면, 적당히 고막을 스치고 사라지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 거죠. 멜로디와 가사가 너무나 중요했던 '옛날 노래'는 그래서 더 심금을 울렸죠. 사연 많은 사람의 옛날이야기 같은 거였으니까요. 구구절절, 궁상 궁상, 애틋 애틋한 노래들 천지였어요.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비루한 현실과 꼭 맞아떨어졌죠. 내 얘기네. 우리 얘기네. 공감하고, 고마워하며 '그 음악'을 들었어요. 가나 초콜릿 한 조각에도 가슴이 뛰고, 교과서를 꽁꽁 싸맨 달력에서 계절을 느꼈던 그때였어요. 그때 들었던 음악이라 그렇게 사무쳤던 거예요. 같은 노래가 지금 나왔다면, 고막에 닿기 전에 사라졌겠죠. 유튜브가, 넷플릭스가, 웹툰과 게임이 훨씬 더 재미난 시대라서 음악도 더 애를 써야 살아남아요. 음악에게도 참 불운한 시대인 거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글로 쏟고, 가벼워져서 떠나고 싶어요. 아직 많은 것들이 내 안에 있어요. 그걸 열심히 쏟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