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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Nov 14. 2020

나는 왜 중국이 좋아졌을까?

좋은 사람을 만나면, 싫어할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그 누구보다 중국에 학을 뗐던 사람이었어요. 전 국민이 소시오패스인가 싶더라고요. 20년 전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였어요. 학원 컴퓨터실에 랜선이 딱 다섯 개가 있었어요. 쉬는 시간마다 그걸 차지하려고, 경쟁이 치열했죠. 중국 놈들이 친구 자리까지 맡아주는 거예요. 쓰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 못 앉게 하는 거죠. 가방 하나 달랑 올려놓고요. 저야 그 가방 치우라고 하고 앉았죠. 이놈들이 중국 노래를 크게 트는 거예요. 이어폰을 꽂고 들어야 된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요. 


-볼륨 좀 낮춰 줄래?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저는 화를 다스리며 공손하게 말했죠. 처음엔 무슨 소리하는 거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알아듣고는 볼륨을 낮춰요. 그리고 자기네들끼리 쑥덕쑥덕. 눈앞에서 험담을 대놓고 하더군요. 중국 놈들은 기본적으로 공감능력이 없구나. 자기한테 듣기 좋은 음악이면, 누구라도 좋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구나. 제가 자취하던 곳에 환이라고 하는 중국 여자애가 살았는데, 자기 나라를 그 누구보다 혐오하더라고요. 제가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래요. 버스에서도 친구 자리를 미리 맡아 준대요. 사람들이 앉을자리가 없어서 서있거나, 말거나요.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도, 안 보이는 곳에서 바꿔치기를 한대요. 싸구려 고기를 팔고, 좋은 부위는 전시만 한대요. 자신도 중국인이지만, 중국인은 상종해서는 안 될 짐승만도 못한 존재라는 거예요. 죽으면 죽었지, 자기네 나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더군요. 


그 거대한 나라가 정말 별로일까? 아시아 여행을 중국 칭다오에서부터 시작했죠. 중국에 3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초반엔 힘들었어요. 중국에 괜히 왔다. 후회의 나날이었죠. 겨울의 중국은 칙칙함 자체였어요. 난방도 제대로 안 돼서 추운 방에서 오돌오돌 떨기 바빴죠. 국물에선 정체불명의 새가 발가락을 꼿꼿이 세우고 있지를 않나, 기름만 둥둥 뜬 국물을 먹으라고 하지를 않나. 식당 바닥에 휴지를 마구 버리더군요. 손님 나가면 한꺼번에 쓸어요. 쓰레기 더미에서 밥맛이 나겠어요? 중국 사람들은 밥을 기본 두 그릇은 먹어요. 대식가의 나라죠. 양푼 밥을 상 가운데 놓고, 몇 그릇씩 젓가락으로 밀면서 허겁지겁 먹어요. 사람인가? 돼지인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해바라기 씨 씹다가 바닥에 뱉으면 그만이고요. 먹었던 쓰레기봉투는 창밖으로 던지면 돼요.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더군요. 


마음의 문이 녹기 시작한 건 양숴부터였어요. 보통은 구이린(계림)을 더 많이 가죠. 배낭 여행자들은 곧장 양숴로 떠요. 물가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아기자기하거든요. 전 중국 수석이었던 장쩌민은 구이린 풍경이 천하제일이고, 양숴 풍경이 그보다 낫다고 했죠. 카르스트 지형의 산들이 우뚝우뚝 솟은 풍경은 중국 무협 영화 자체였죠. 날씨가 이렇게나 중요하더라고요. 겨울이지만 가을 날씨 정도로 온화하더군요. 풍경과 날씨가 살살 녹더군요. 기름기 많은 음식도 슬슬 적응이 됐는데, 특히 어향가지에 푹 빠졌어요. 다진 돼지고기 가지찜인데, 진짜 입에서 녹더라고요. 한국에서 먹던 풍선 질감의 가지 요리와 아예 다른 요리더라고요. 토마토가 들어간 중국식 오믈렛과 어향가지, 그리고 맥주 한 병이면 세상 더 바랄 게 없더라고요. 먹을 것까지 적응이 되니, 중국이 달라 보이더군요. 


청두가 결정적이었어요. 청두는 지금도 당장 달려가고 싶은 도시예요. 맥주로 유명한 칭다오 아니에요. 이름 비슷하다고 헷갈리시면 안돼요. 청두, 한자로는 성도. 쓰촨 성의 주도죠. 삼국지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일단 사람들이 느릿느릿, 친절해요. 판다곰 같아요. 술집에서 나이도 한참 어린놈이 저를 친구들한테 데리고 가더군요. 딱 봐도, 고위층 자제 같더라고요. 술이며, 음식이며 계속 권해요. 다음날 청두 도시 곳곳을 가이드해주는데, 절대로 돈을 못 내게 하더군요. 손님은 대접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라고요. 비슷한 경험을 청두에서 동티베트로 넘어갈 때 또 한 번 했어요. 휴게소에서 음식 주문을 못 하고 쩔쩔매는데, 중국인 친구가 자기랑 먹재요. 알아서 주문하더니, 제가 돈을 내려고 하니까 정색을 하더라고요. 자기랑 같은 방에서 자자는 거예요. 공짜에 눈이 멀어서 그 친구랑 한 방에서 잤어요. 그 친구가 방값을 냈죠. 잠이 와야 말이죠. 장기라도 털릴까 벌벌 떨리더라고요. 자꾸만 전화를 좀 받아보래요. 자기 누나더라고요. 청두에서 선생님을 한다며 떠듬떠듬 영어로 말하더군요. 어쩌라는 거지? 전화를 끊고 나서 이 친구의 본격적인 손짓 발짓 바디 랭귀지가 시작돼요. 가까스로 이해했어요. 여행 끝나고 다시 청두로 오라는 거예요. 자기 누나를 만나 달래요. 제가 매형 감으로 마음에 들었던 거죠. 외진 곳에서 숙소를 못 찾아서 발을 구르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재워준 사람도 있었어요. 


이런 고마운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제가 중국을 어찌 미워하겠어요? 좋은 인연을 만나면, 그 나라가 남 같지가 않아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자기네나 중요한 이슈로 핏대를 올릴 때면 전 중국 욕해요. 그렇다고 중국 사람은 쓰레기. 그렇게까지 비약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쓰레기인 사람도 있는 거지, 좋은 사람도 많으니까요. 직접 목격했으니까요. 중국 사람들 장점 많아요. 특히 타인의 단점을 물고 늘어지지 않아요. 그럴 수도 있지. 호탕하고, 관대해요. 대신 남의 고통에 둔감한 건 있어요. 새치기도 잘하고, 도미토리에서 남이 자거나 말거나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는 무경우도 많아요. 저에겐 다시 가고 싶은 나라예요. 중국 친구들과 도란도란 차를 마시고, 귀 파주는 사람에게 귀를 맡기고, 대나무 공원을 거닐고 싶어요. 바람 소리를 사브작 들으면서요. 경우 없는 중국인에겐 따끔하게 한소리 해야죠.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의 편견도 누그러질 줄 알아야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그 큰 나라에 배울 점 있는 사람이 설마 없을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가지 못한 곳을 제가 가고, 보지 못한 것을 제가 대신 보고 전해 드리고 싶어요. 그러라고 이렇게 떠돌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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