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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이 났어요 - 몸살 명상

내 몸이 우주고, 지금 이 우주가 폭신하게 가라앉았어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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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거운 날이 있어요. 오늘이 그런 날이네요. 열기운도 좀 있고요. 이럴 때는 저에게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이 생각나요. 미워서가 아니라, 이해가 돼서요. 모든 게 다 꼴 보기 싫죠. 밝으면 밝은 대로, 침울하면 침울한 대로요. 몸 상태가 생각을 지배하니까요. 득도한 철학자도 똥마려우면 인상부터 쓰지 않겠어요? 그래도 악플은 잘못이죠. 내가 힘들다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 쓰나요? 나는 나름 단련됐다. 악플도 관심이니, 나에게로 오시오. 나만 호탕한 척할 수야 있죠. 그런 사람들이 나에게만 그러겠어요? 두루두루 시비를 걸고 다니겠죠. 세상이 나처럼 불행해져야 공평하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어디다가 풀기는 해야 하는데, 참 풀 방법이 마땅치 않아요. 악마라서가 아니라, 응어리가 풀리지 않아서 날 선 말만 나오는 건데요.


저는 약간의 몸살기를 좋아해요. 큰 병만 아니라면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감정으로 누워 있어요. 온몸이 쑤시긴 하지만, 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얼마나 가혹할까도 생각해요. 항암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유튜브를 저는 왜 찾아보고 있는 걸까요? 무섭고, 안타깝지만 봐요. 어떻게 말기가 됐는지, 무슨 치료 중인지를 담담히 들어요. 나는 아직 암은 아니겠지. 근거 없는 안심을 하면서요. 누가 누구를 동정하는 걸까요? 병의 운명은 아무도 모르는데요. 당장 병원에서 공식적인 선고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는 멀쩡한 사람인 척해요. 그들의 투병기를 보면서, 욕망을 새삼 되물어요. 표현하고 싶은 그 지독한 욕망을요. 욕망이란 게 뭘까요? 통증과 싸우다가 기절까지 하는 마당에 영상을 편집해요. 구독자가 늘었다며 기뻐해요. 댓글을 보는 게 낙이라며 병실에서 활짝 웃어요.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걸까요? 외롭고 싶지 않은 걸까요? 둘 다겠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을 텐데, 강인해만 보여요.


-언제 죽나요?


이런 악플러도 있었어요. 스물세 살의 대장암 4기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담담하게 웃어요. 혼돈의 세상이라, 삶과 죽음도 헷갈려요. 나만 심각한 걸까? 누가 죽어도, 연못 속 자갈 하나 퐁당한 느낌이죠. 흔적도 없어요. 아주 잠시 오열하고 끝나요. 길어야 일주일이에요. 그리고는 다시 평화로운 연못이에요. 커뮤니티마다 죽는 방법에 대해 묻는 친구들이 꼭 있어요.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죽는지가 궁금해요. 그리고 한쪽에선 말기 환자지만 전력을 다해서 자신을 표현해요. 헷갈려요. 제 머릿속 전형적인 가치들이 흔들려요. 저도 잠시 심각한 척하지, 재빨리 일상으로 돌아와요. 그래요. 저라고 딱히 심각한 인간도 아니었어요. 누가 오래 묵념하는가 정도였던 거죠. 쓸쓸하지만, 타인의 죽음도 일상이 됐어요.


하나씩 잃어갈 때마다 집중력이 올라감을 느껴요. 안경 없는 뿌연 세상이, 쑤시는 몸이, 미열로 뜨거워진 이마가 저를 가라앉혀요. 청춘의 몸뚱이였을 때는, 멈춤은 손해였죠. 감옥이었죠. 그래서 가만히 있지를 못했어요. 이제 이 좁은 방안이 아무렇지도 않아요. 24시간 갇혀 있어도, 일정한 호흡으로 숨 쉴 수 있어요. 방이 점점 커지고, 전부가 되고, 우주가 돼요. 몸뚱이가 안 아프면 더 좋겠지만, 적당히 불편한 것도 나쁘지 않아요. 당장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으니 되려 자유로워요. 나에게 머물 수 있는 성숙함이 생기는 거죠. 더 많은 걸 잃을수록, 나와야 할 글들이 나오는 걸까? 두려운 생각을 해요. 그래도 더 잃고 싶지는 않아요. 인류에 남는 어마어마한 걸작을 꼭 제가 쓸 필요가 있나요? 인간적인 안락을 꿈꿔요. 하지만 꼭 그런 글을 써야 할 운명이라면, 결국엔 받아들이겠죠. 그 몰아치는 과정이 오지 않았으면 해요. 지금 정도의 몸살이 딱 좋아요. 인간은 타들어가는 종이예요. 이렇게 열이 나는 것 좀 보세요. 눈치 못 챌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타들어가서 잿가루로 떨어져요. 살 가루들이 바람에 날리면서 늙고, 죽어가는 거죠. 매일 쓸어도 나오는 먼지가 제 몸가루였던 거죠. 오늘은 아늑한 몸살의 세상에 좀 더 머물러 볼까 해요. 내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굿모닝 인사를 해야죠. 시간이 천천히, 매끄럽게 흐르고 있어요.


감자를 볶는데 인덕션에서 바퀴벌레가 나오지 뭡니까? 그거 잡으려다가 화상 입을 뻔했어요. 바퀴벌레는 다시 인덕션으로 기어 들어가고, 아무리 흔들어도 안 나와요. 바퀴벌레도, 저도 지옥이네요. 숨어 사느라, 삐쩍 곯았어요. 그냥 나와서 나에게 좀 죽어 줄래? 이리 잔인한 저는 채식주의자는 못되려나 봐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그날의 솔직한 감정을 최대한 쏟고 싶습니다. 쉽지 않지만, 방향은 그렇게 흘렀으면 해요. 남기지 말고 쓸 것. 가장 필요한 건 용기겠죠. 주말의 시작, 너무 무거운 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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