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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Nov 15. 2020

혜민스님이 쏘아 올린 큰 공

내가 마음껏 혜민스님 욕을 못 하는 이유

73년생 동갑이더군요. 사실 저는 국민학교 때 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인상이 얼핏 비슷해서요. 혜민스님은 고등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나왔더라고요. 입바른 소리 잘하는 땡중으로 완전 낙인이 찍혔더군요. 남산 조망 단독 주택도 좋고, 유료 힐링 어플도 다 좋아요. 불법은 아니니까요. 눈치가 그리 없어서 무슨 사업을 한다는 건가요? 과거의 스님 모습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지만, 그렇게까지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죠. 대중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요. 하바드 대학까지 나와서, 스님의 길을 걷는 낮은 자세에 반한 건데요. 많은 걸 내려놓은 사람이겠구나. 그래서 더 궁금해했던 건데요. 그렇다고 저는 세상 사람들 편도 아니에요. 편이라는 말이 웃기긴 한데, 모두가 일치단결 혜민스님을 공격 중인 건 사실이니까요.


왜냐면 제가 그렇게 돈과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요. 나라면 그렇게 뻔뻔하게는 못 산다. 그런 말은 누가 못 하나요? 자신의 권력이나 지위가 달라져도 한결같이 겸손할 자신이 있다고요? 겉과 속이 일치하는 투명한 사람일 수 있다고요?욕심의 노예는 될 일 없다고요? 주변을 볼까요? 손님이라는 알량한 권위로 갑질을 하는 사람이 드문가요? 연애를 볼까요? 자신이 더 사랑받는 입장일 때, 그게 좀 일방적일 때 상대방을 노예처럼 부리는 사람 못 보셨나요? 군대에서 선임이라는 이유로 구타와 가혹 행위를 일삼는 건 뭔가요(요즘은 달라졌다고 믿습니다)? 댓글도 마찬가지죠.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력이죠. 바른말로 생색도 낼 수 있고, 괘씸한 사람을 처단할 수도 있으니까요. 눈 앞에서 당사자에게 직접 말하라고 하면 쉽게 말할 수 있겠어요? 익명이니까, 얼굴 까고 도발하는 거 아니니까 마음껏 할 말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용감함으로 무장했다면 빵셔틀이 왜 있겠어요? 일진 애들에게도 당당하게 바른말했겠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비대하게 정의롭다는 생각 안 드시나요? 아주 작은 권력만 생겨도, 갑질 악마로 변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요.


혜민스님은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에요. 한 줄 한 줄 무슨 말만 하면 다들 떠받들어 줬어요. 고3 때부터 종교 팔아서 한몫 잡아보자. 빅 픽처를 그리면서 종교학을 공부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싶었겠죠. 선한 영향력에 돈까지 버는 걸 굳이 마다하지 않았을 뿐이죠. 자신이 원한 적도 없는데 의전 차량을 보내고, 구름 떼처럼 몰려서 사인을 요구하니 왕이 된 줄 안 거죠. 이래도 되나 싶은 행동들을 했더니, 더한 행동을 해도 됩니다. 알아서 굽실거렸겠죠. 그래서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시원하게 뻗은 거죠. 눈치도 좀 보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럴 기회도, 필요도 없었던 거죠. 반성보다 확신이 머릿속에 꽉 차면, 바보가 수밖에 없어요.


현실 감각을 유지하는 건 어려워요. 상상 이상으로 어려워요. 피골이 상접한 연예인들에게 주변에서 다들 예쁘다고 난리예요. 그 정도가 상상을 초월해요. 코디나 메이크업해주는 사람들이 예쁘다를 1분에 다섯 번씩 반복해요. 보통 사람이 볼 땐 영양실조의 위태로운 환자지만, 연예인들은 그게 미의 기준이에요. 실제로 카메라에선 더 잘 나오기도 하니까요. 자기네들끼리 피골이 상접해지지 못해서 우울해하고, 열등감을 가져요. 연예인들 세상은 전혀 다른 상식과 기준이 있어요. 혜민 스님뿐이겠어요? 우리가 유명인들의 실체를 어찌 아나요? 이미지만 보고, 믿고, 따르고, 복종을 맹세하는 거죠. 제가 만인에게 욕먹을 위선자가 될 수 없었던 건, 그럴 지위와 돈이 없어서예요. 그러니까 돌을 던질 수가 없어요.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는 괴물인데, 당장 가난뱅이 글쟁이일 뿐인 거죠. 나도 얼마든지 나쁜 놈이다. 그걸 명심하고, 경계하려고요. 성공한 사람이 건방져지지 않는 건(현실 감각을 유지하는 건) 엄청난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미덕임을 명심, 또 명심하려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채워서 더 나아지는 사람이기보다, 비워서 더 가벼워진 사람이고 싶어요. 글을 쓰면서, 제 안의 찌꺼기들이 쓸려 나가기를 바랍니다. 가볍게, 가볍게 사라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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