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이가 또 찌릿한 거예요. 전기가 오는 것처럼요. 썩은 건가? 작년에 한국에서 다 긁어내고, 무려 금으로 채웠어요. 씹는 재미에 날아갈 것 같더군요. 치과 의사느님들 돈 많이 벌어야 해요. 그렇게 중노동인 줄 몰랐어요. 환자들 눕혀놓고,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면서 긁고, 뽑고, 채우더군요. 반대쪽 어금니가 뭐만 씹으면 또 찌르르한 거예요. 태국 치과를 못 믿는 건 아니에요. 예전 치앙마이에서 충치 치료 아주 저렴하게, 거의 공짜로 했어요. 3만 원 정도에 이 두 개를 긁어내고, 아말감으로 채워 넣었죠. 일 벌이는 게 무서운 거죠. 임플란트라도 하게 되면, 통장에 있는 돈 긁어서 바쳐야 하니까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해보는 거예요. 일단 저는 무식합니다. 충치의 밥줄을 끊겠다. 설탕과 밀가루, 흰쌀밥 같은 탄수화물이 충치의 밥줄이 아닐까? 대신 감자나 고구마는 먹어요. 탄수화물이지만, 가공된 식품이 아니니까요.
설탕이 안 들어가면 음식이 짜고, 써지죠. 소금까지 줄이면 맹탕이고요. 설탕 대신 사과를 넣기로 해요. 과일도 결국은 설탕이라는데, 그래도 자연의 힘을 믿어 보는 거죠. 덜 가공된 음식이 몸에 들어오면, 천천히 소화될 테니까요. 가공 식품의 문제는 너무 빨리 흡수되는 거라면서요?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면서 혹사당하는 거죠. 저라고 이렇게 유난 떨고 싶겠어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떡볶이라고요. 그것도 어쩌면 포기하고 살아야 해요. 먹는 재미가 인생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고요. 몸이 파업을 하는데 어쩌겠어요? 제가 무슨 수로 이겨먹냐고요?
밀가루는 거의 끊었고요. 쌀밥은 하루 한 끼 정도 먹어요. 설탕은 거의 안 넣고요. 꼭 넣어야 하면 꿀 조금 넣고요. 이렇게 먹은 지 한 달 정도 됐고요. 씹을 때 통증은 사라졌어요. 플라세보 효과일 수도 있어요. 저처럼 귀가 얇은 사람은 초반 효과가 굉장해요. 그리고 서서히 효과가 사라져요. 의심하고, 변심하고, 중단하죠. 중단하고, 시도하기를 반복해요. 그래도 신기하긴 해요. 잦은 통증이 왜 감쪽같이 사라진 걸까요? 충치의 먹이는 설탕, 흰쌀밥, 밀가루였던 걸까요? 이건 효과가 좋아도 문제예요. 정말 떡볶이도 끊어야 한다는 계시잖아요? 불안감도 줄었어요. 폭식을 덜 하게 돼요. 밥을 많이 먹을 때는, 식탐 조절이 힘들었거든요. 술 취한 사람이 계속 들이붓는 것처럼 밥에 취해서, 두 그릇, 세 그릇 먹어치웠죠. 고구마나 감자로 한 끼를 때우니까, 정량을 먹게 돼요. 과식이 힘들어요. 솔직히 배불리 감자나 고구마를 먹고 싶지도 않아요. 흰쌀밥이나 밀가루 음식이 백해무익했다면 너무 오래 먹었던 거 아닐까요?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음식을 장복해도 되는 걸까요? 특히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 걱정돼요. 오히려 담배는 제한적으로 소비하지만, 이런 것들은 매일 먹는 거라서요.
에휴, 제가 이런 걸로 핏대를 세우게 될 줄 누가 알았나요? 평생 젊은 소화력으로, 유난 떠는 사람을 비웃으며 살 줄 알았죠. 당장 치과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여러분께 알립니다. 식탁에서 밥과 쌀국수와 라면이 사라지고 있어요(그렇다고 백 프로 끊은 건 아니고요). 먹고 싶은 걸 못 먹는데 세상 살아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잠시 들다가다요. 나름 찐 감자에 김치도 맛있음을 인정하기로 해요. 먹을 수 있는 것들에 감지덕지해야죠. 배부른 소리 그만 하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결핍을 비슷한 이웃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혼자인 것 같지만, 또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헷갈린 감정으로 이번 생을 살아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