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우 Nov 19. 2020

설탕과 밀가루, 흰쌀밥을 적게 먹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작년에 치과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때 ㅋㅋ 사진이 커서 죄송합니다 ㅠㅠ 


이가 또 찌릿한 거예요. 전기가 오는 것처럼요. 썩은 건가? 작년에 한국에서 다 긁어내고, 무려 금으로 채웠어요. 씹는 재미에 날아갈 것 같더군요. 치과 의사느님들 돈 많이 벌어야 해요. 그렇게 중노동인 줄 몰랐어요. 환자들 눕혀놓고,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면서 긁고, 뽑고, 채우더군요. 반대쪽 어금니가 뭐만 씹으면 또 찌르르한 거예요. 태국 치과를 못 믿는 건 아니에요. 예전 치앙마이에서 충치 치료 아주 저렴하게, 거의 공짜로 했어요. 3만 원 정도에 이 두 개를 긁어내고, 아말감으로 채워 넣었죠. 일 벌이는 게 무서운 거죠. 임플란트라도 하게 되면, 통장에 있는 돈 긁어서 바쳐야 하니까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해보는 거예요. 일단 저는 무식합니다. 충치의 밥줄을 끊겠다. 설탕과 밀가루, 흰쌀밥 같은 탄수화물이 충치의 밥줄이 아닐까? 대신 감자나 고구마는 먹어요. 탄수화물이지만, 가공된 식품이 아니니까요. 


설탕이 안 들어가면 음식이 짜고, 써지죠. 소금까지 줄이면 맹탕이고요. 설탕 대신 사과를 넣기로 해요. 과일도 결국은 설탕이라는데, 그래도 자연의 힘을 믿어 보는 거죠. 덜 가공된 음식이 몸에 들어오면, 천천히 소화될 테니까요. 가공 식품의 문제는 너무 빨리 흡수되는 거라면서요?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면서 혹사당하는 거죠. 저라고 이렇게 유난 떨고 싶겠어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떡볶이라고요. 그것도 어쩌면 포기하고 살아야 해요. 먹는 재미가 인생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고요. 몸이 파업을 하는데 어쩌겠어요? 제가 무슨 수로 이겨먹냐고요?


밀가루는 거의 끊었고요. 쌀밥은 하루 한 끼 정도 먹어요. 설탕은 거의 안 넣고요. 꼭 넣어야 하면 꿀 조금 넣고요. 이렇게 먹은 지 한 달 정도 됐고요. 씹을 때 통증은 사라졌어요. 플라세보 효과일 수도 있어요. 저처럼 귀가 얇은 사람은 초반 효과가 굉장해요. 그리고 서서히 효과가 사라져요. 의심하고, 변심하고, 중단하죠. 중단하고, 시도하기를 반복해요. 그래도 신기하긴 해요. 잦은 통증이 왜 감쪽같이 사라진 걸까요? 충치의 먹이는 설탕, 흰쌀밥, 밀가루였던 걸까요? 이건 효과가 좋아도 문제예요. 정말 떡볶이도 끊어야 한다는 계시잖아요? 불안감도 줄었어요. 폭식을 덜 하게 돼요. 밥을 많이 먹을 때는, 식탐 조절이 힘들었거든요. 술 취한 사람이 계속 들이붓는 것처럼 밥에 취해서, 두 그릇,  세 그릇 먹어치웠죠. 고구마나 감자로 한 끼를 때우니까, 정량을 먹게 돼요. 과식이 힘들어요. 솔직히 배불리 감자나 고구마를 먹고 싶지도 않아요. 흰쌀밥이나 밀가루 음식이 백해무익했다면 너무 오래 먹었던 거 아닐까요?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음식을 장복해도 되는 걸까요? 특히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 걱정돼요. 오히려 담배는 제한적으로 소비하지만, 이런 것들은 매일 먹는 거라서요. 


에휴, 제가 이런 걸로 핏대를 세우게 될 줄 누가 알았나요? 평생 젊은 소화력으로, 유난 떠는 사람을 비웃으며 살 줄 알았죠. 당장 치과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여러분께 알립니다. 식탁에서 밥과 쌀국수와 라면이 사라지고 있어요(그렇다고 백 프로 끊은 건 아니고요). 먹고 싶은 걸 못 먹는데 세상 살아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잠시 들다가다요. 나름 찐 감자에 김치도 맛있음을 인정하기로 해요. 먹을 수 있는 것들에 감지덕지해야죠. 배부른 소리 그만 하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결핍을 비슷한 이웃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혼자인 것 같지만, 또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헷갈린 감정으로 이번 생을 살아보자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국민성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