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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Nov 20. 2020

왜 한국 영화는 재미있을까?

전부를 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영화판에도요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는 날도 오네요. 대학생 때 내기를 한 적이 있어요.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할 것이다. 네, 제가 예언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대부분은 저를 비웃었죠. ‘기생충’이 아카데미 주요 부문을 휩쓸었으니, 사실 제가 예상한 것보다도 더 잘 된 거죠. 김지운 감독이 '라스트 스탠드'로, 박찬욱 감독이 '스토커'로, 심형래 감독이 ‘라스트 갓파더’로 할리우드 입성에 성공했죠. 한때는 소설이 문화 콘텐츠의 핵심이었죠. 이제는 영상이 그 자리를 꿰찼어요. 자본력이 있는 미국이 콘텐츠 부자인 것도 맞지만, 어느 순간부터 참 매가리가 없다는 생각을 해요.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오싹한 반전이라든지, 감독이 마피아인가 싶은 ‘대부’ 시리즈, 규모와 스토리 모두에서 ‘어나더 레벨’이었던 ‘바람과 사라지다’, 막장 코미디는 우리만 할 수 있다 ‘사우스 파크’, '타이타닉'에서 '아바타'까지 만들어내는 초능력자 감독 제임스 카메론까지. 비교할 만한 라이벌이 전무했죠. 우리가 미국이다. 굳이 입 아프게 주장할 필요가 없었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비슷하게도 만들지 못했으니까요. 오직 미국만이 재미와 깊이를 모두 주무를 수 있었죠. 최근에 ‘겟 아웃’을 정말 재밌게 봤어요. 거슬러 올라가면 ‘Her’, ‘라라 랜드’, ‘배트맨 다크 나이트’도 아주 좋았어요. 한국 영화 중에는 ‘추적자’, ‘살인의 추억’, ‘똥파리’, ‘파수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떠올라요. 저에게 정서적 충격은 후자가 더 커요. 미국 사람에겐 미국 영화가 더 와 닿을 수도 있겠죠. 예전엔 저 역시 미국 영화였어요. 한국 영화는 애국심 끼얹어서, 억지로라도 봐줘야 하는 영화였죠. 보고 나면 안쓰러운 영화가 한둘이 아니었어요. 기본도 안 되는 영화라고 나까지 외면하면 망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던 거잖아요. 미국 영화가 더 재밌어도, 의무적으로 한국 영화를 상영하라. 불공정한 거 알지만, 거대 자본 편 들어주는 게 공정한 것만은 아니지 않으냐? 알쏭달쏭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은 논리로 한국 영화를 보호했어요. 그렇게 보호받지 않으면, 사라져야 마땅한 영화들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지금 저는 한국 영화가 더 기대가 돼요. ‘추격자’는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징글징글한 잔인함 때문에요. 제가 하정우였다면, 출연 안 했을 거예요. 그런 지독한 영화를 제작 시점부터 모두가 공유하고, 합의하고, 기꺼이 출연했다는 게 놀라워요. 그런 장면들에 몰입하고, 몰입하라고 다그쳤을 감독이 섬뜩해요. ‘논란'은 시대의 눈높이를 되묻는 거죠. 거부감을 넘어서서, 탄탄한 완성도로 대중을 포박하는 거죠. 먹기 싫어 도리질을 하는데도, 억지로라도 입에 물린 영화였어요. 그걸 삼키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맛을 음미하게 되더군요. 진저리를 칠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을 꼼꼼하게 채우는 섬세함이 영화를 걸작으로 올려놨죠. 선을 넘는 잔혹함에 꼼꼼함을 추가한 영화였어요. 그런 시나리오들이 충무로에 유령처럼 떠돌고, 귀신처럼 낚아챈 제작사가 신들린 연기자들을 꼬드겨서 영화를 만들어요.      


가끔 미국 TV 시리즈에서 한국 묘사하는 장면이 나와요. 동남아시아 어디쯤을 한국이라고 우기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요. 한국 한 번도 안 와본 무대감독이 세트를 만들면 무사통과예요. 한국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어서 세트를 만드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죠. 제대로 만들겠다는 긴장감을 어디서 느껴야 할까요? 그러건 말건. 다른 나라에 무지한 사람들이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거죠. 내 이름 석자 엔딩 크레딧에 나오면 가문의 영광인 사람들이 한국엔 차고 넘쳐요. 조폭을 만나고, 형사를 쫓아다녀요. 경찰서에서 먹고, 자다시피 하면서 시나리오를 써요. 그런 치열함이 당연함이 되었어요. 한국 영화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이유죠.


지금 영화 ‘조제’ 예고편만 봤는데 눈물이 핑 도네요.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정말 좋게 봤거든요. 그런데도 한국 영화가 기대돼요. 원작 이기는 리메이크 없다지만, 한국 영화라서요. 이런 믿음을 주기까지 오랜 시간 참 고생 많았어요. 이번 겨울 ‘조제’로 한국이 눈물바다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한국 가면 챙겨보려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지금 방콕의 노란 햇빛을 보면서 써요. 이곳이 환할 땐 환한 글을 쓰고, 흐리면 흐린 글을 써요. 내게 있는 소소함이, 누군가에겐 반가움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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