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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Nov 22. 2020

청춘 씨! 여행이 돈 낭비, 시간 낭비라고요?

저는 동의하지 못하겠어요 

저는 지금 암파와에 와 있어요. 수상 시장으로 유명하죠. 방콕에 오면 수상시장은 꼭 들르시는 분들 많죠. 코로나로 외국인도 끊겼겠다. 한가하겠거니 했는데, 웬걸요? 걷기 힘들 정도로 바글바글하더라고요. 배 타고 반딧불 보는 게 유명 코스 중 하나인데, 귀찮아요. 힘들어요. 마냥 신기해하면서 잘 즐기는 사람이 아닌 걸 알거든요. 언제 끝나나? 언제 숙소 가서 쉬나? 이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이라서요. 이게 원래 제 모습이에요. 귀찮은 거 싫어하고, 일 벌이는 거 싫어하고. 꿉꿉한 것도, 불편한 잠자리도 딱 질색인 사람이 저죠. 


네, 저는 여행을 하며 글을 쓰고 살아요. 아, 저는 비위도 약한 사람이었어요. 친구들이 내가 먹던 빵이나 사과를 한 입만 달라고 하면, 이빨 자국 때문에 입맛이 싹 달아나더라고요. 더 어릴 때는 동네 친구들 거 거지처럼 잘 뺏어 먹었는데 말이죠. 남의 나라 사람이 구렁이 같은 똥 누고, 물 안 내리면 제가 씩씩하게 잘 내려요. 변기가 고장 나면 손 놓고 도망가는 놈들 많아요. 양동이에 물 받아서, 높은 곳에서 수직 낙하를 시켜요. 뚜껑 열고 물도 채워 놓고요. 이런 사람이 됐어요. 해보니까 또 별거 아니더라고요. 여행이 좋은 건 줄 몰랐는데, 실제로 해보니 저랑 맞더라고요. 촌놈이 여행 재미에 제대로 맛 들인 거죠. 


여유가 있어서 여행을 한 게 이니라, 나름 절박한 이유로 도망갔어요. 약해 빠져서요. 적응 못해서요. 월급 도둑질하면서 대충 시간 때우는 배짱도 없어서요. 그런데 요즘 친구들이 여행에 대한 적의를 가득 품고 있더군요. 


누구는 여행 좋은 거 모르냐? 겉멋이다. 다녀와서 대책은 있느냐? 여행 가서 뭘 얻는다는 거 자체가 허세 아닌가? 나는 경주 수학 갔다 와서 아무것도 얻은 게 없던데? 


실용적이지 않은 쾌락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이들을 가차 없이 비난하더라고요. 그만큼 여유가 없는 거죠.

벼랑 끝에 몰렸다고 생각하니, 유유자적 한량 짓이 한심해 보였겠죠. 셀카나 찍으려고 수백만 원 쓰는 허세 관종들이 좋게 보일 리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 절박한 세대가 아프리카 tv 별풍선에, 콘서트에, 아이돌 굿즈에, 게임 아이템에는 또 펑펑 쓰더군요. 그런 사람들을 공격하지도 않고요. 받아들이는 거죠. 그런 재미에 공감하고, 동의하고, 본인도 즐기고요.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반감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왜 돈 펑펑 쓰면서 불편하고, 낯선 세상으로 뛰어들까? 


제가 매료되었던 건,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낯섦이었어요. 고막에 닿는 소리까지도 다르니까요. 햇빛이 투과되는 흙먼지 빛깔도, 마트의 과일도, 편의점의 도시락도 획기적으로 달라지니까요.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 어리둥절해지니까요. 그 어리둥절함은 불안함이고, 두려움이고, 설렘이죠. 쓸 일 없었던 감각들이 일제히 자각해서 회전하고, 펌프질을 해요. 소화불량이 심한데, 낯선 곳의 첫날은 그렇게 소화가 잘 돼요. 내 안의 모든 기관이 활성화되는 느낌이랄까요?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곳들엔 착한 사람들이 살아요. 착한 사람들'만' 살지는 않아요. 사기꾼도 있고, 바가지도 있어요. 하지만 90%는 착해요. 선한 마음으로 다가오고, 도와줘요. 궁금해하고, 반가워해요.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확장되고, 나의 이해력 역시 팽창해요. 그럴 수 있겠다. 관용의 능력치도 몰라보게 성장해요. 혀끝으로 먹거나 뱉었던 맛의 기억들이, 늘어진 뇌를 명징하게 길들여 놔요. 전 꼰대이고 싶지 않아요. 여행이 무조건 좋다. 이렇게 우기고픈 마음도 없어요. 하지만 여행이 시간 낭비, 돈 낭비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어떤 사람에겐 일생을 바꾸는 치명적인 자극이 될 수 있어요. 남은 여생을 다른 나라에서 살아볼까? 인생의 선택지가 하나에서, 둘, 셋, 혹은 백으로 늘어나요. 그런 잠재적 가치를 무시하고, 퉁쳐서 여행 손절을 주장하다뇨? 청춘이 가능성이듯이, 여행도 가능성이에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궁무진한 공간들을 차단하지 마세요. 별로 크지도 않은 지구를 제대로 살 발라 먹어야죠. 가성비 삶은 그런 게 아닐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떻게 살아도 후회는 남겠죠. 매일 글을 쓴 삶은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로 남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매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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