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자식도 불완전해요. 건강한 출발은 그렇게 시작되죠
-너는 왜 그렇게 남 흉보는 걸 좋아하니?
-왜, 남 핑계를 대?
-너는 애가 좀 이기적이야. 정이 없어.
저는 이런 말을 여덟 살, 아홉 살 때부터 들었어요.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에게요. 밥을 먹다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죠. 나를 괴롭히는 애, 도둑질을 한 아이, 더러운 아이 이야기를 해요. 밥상머리 화제도 자극적인 게 최고니까요. 저만 신났고, 어머니는 호응을 도통 해주지 않으시더라고요. 저는 남 험담을 좋아하는 파렴치한 아이가 되어 버려요. 어머니 말씀이 틀렸겠어요? 꼬맹이가 이기적이고, 남 욕 하는 아이 맞겠죠. 형과 저는 한 살 터울이니까, 당연히 형과 비교를 하게 되죠. 형에겐 그런 지적을 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저나 형이나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야 뻔하잖아요. 우리 장남은 정이 많고, 따뜻한 아이라며 쓰다듬어 주시는 거예요. 어머니만 사라지면 괴롭히고, 때리는 사람인데요? 내 몫까지 뺏어 먹는 사람도 형인데요? 도대체 맞고, 뺏기고, 노예가 되는 사람은 이기적인 놈이 되고, 때리고, 뺏는 사람은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이 되어도 되는 건가요?
얻어터지는 아이라고 해서, 이기적이지 않다. 그런 논리는 없죠. 이기적인 아이 맞아요. 지기 싫어하고, 말대꾸도 밉게 잘해서 분명 어머니 눈에는 못마땅하셨을 거예요. 아이 답지 않은 아이였으니까요. 그런데 왜 커서는 다른 소리를 하시냐고요? 일단 그런 과거를 전부 부정하시더군요. 형만 편애한 기억이 없으시대요. 다행히 그 자리에 있던 이모들이 도와주더군요. 어릴 때부터 제가 불쌍했대요. 이모라고 해도 네, 다섯 살 차이밖에 안 나서 형제 싸움에 끼어들 수가 없더래요. 저 또한 바락바락 대들다가 맞은 거니까요. 어른들의 잣대로, 그때의 다툼을 해석하고 싶지 않아요.
그때 저는 몹시 불안했어요. 인간쓰레기가 된 것 같아서요. 너도 나아질 수 있다. 괜찮아질 수 있다. 이런 말을 꼭 듣고 싶었어요. 끝내 들을 수 없었죠.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가족을 신격화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완벽하지 않아요. 아버지도요. 아기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는 거예요. 자식에 대한 사랑이야 의심할 수 없이 크지만, 표출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에요. 그래 봤자 삼십 대 초반의 엄마가 어떻게 완벽하고, 공평하겠어요? 어머니가 저에게 했던 지적은 더러는 맞고, 더러는 틀렸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형에게도 더러는 관대하고, 더러는 불공정했을 거예요. 가정이라는 가치에 순교를 절대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요. 싹퉁머리 없이 들릴 수는 있어도, 더 큰 여유를 줘요. 부모님께 절대적 복종이 일단 불가능해요. 그런 압박감에 체하면 되려 증오가 싹트게 되더라고요. 가족 간의 의절도 드문 세상이 아니에요. 가족 구성원들은 때론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일 수 있어요.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 화목하고, 성실해 보이는 가정만 보지 마세요. 그렇게 사는 가정이 의외로 소수예요. 지금 저는 어릴 때 이야기도 곧잘 해요. 서운했다고, 억울했다고요. 웃으면서요. 왜 웃을 수 있겠어요? 그때의 젊은 엄마도, 지금까지 기억하는 저도 불완전하니까요. 불완전할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편하니까요. 완벽하지 않은 저의 생을 사랑해요. 나를 불안하게 했던 그 모든 의심이 저에게 악영향만 끼친 건 아니라서요. 더 공정한 집에서 태어나고 싶냐고요? 전혀요. 완벽한 가정은 없어요. 멋진 결핍과 넘치는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랐으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떤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니?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니? 제게 물어요. 딱히 답이 안 떠올라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제가 충분한가 봐요. 좋은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