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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Nov 25. 2020

싸구려 숙소의 추억 - 우리는 가난해서 행복했으니

텁텁하고, 습기 가득한 추억  

시리아 마르무사

배낭 여행자가 아니었다면 도미토리란 게 있는 줄도 몰랐겠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게다가 남녀가 섞여서 잠을 자는 곳이에요. 전학생이 교실 문을 열 때의 긴장감이랄까요? 방으로 들어설 때면, 침이 꼴깍 삼켜져요. 며칠씩 묵으면서 친분을 쌓은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거죠. 방은 무조건 최저가에서 골랐어요. 눈만 감으면 5성급 호텔도 암흑인데, 왜 자는데 돈을 낭비하냐고요? 좋은 호텔에서 자본적도 없어서, 서글프거나, 억울하지도 않았어요. 잠은 잠이에요. 지붕만 있고, 벽만 있으면 돼요.


아, 창문도 있어야겠더군요.


필리핀 세부에서였어요. 택시 기사가 싸고, 좋은 숙소가 있다는 거예요. 괜히 방 찾느라 기운 빼지 않아도 되겠다. 늦은 밤이었으니까요. 택시 기사는 적어도 사기를 친 건 아니었어요. 싸고, 깨끗했어요. 대신 창문이 없었어요. 문은 필요 이상으로 두꺼워서, 외부의 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더라고요.  아무리 어두워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구의 윤곽은 보여야 하잖아요. 지금 내 눈에 문제가 생긴 건가? 더듬더듬 문을 찾아서 열면, 말도 못 하게 눈부신 복도의 형광등이 황소처럼 들이미는 거예요. 그렇다고 문을 열고 잘 수는 또 없잖아요. 자다가 깜짝 놀라서 눈을 뜨지만, 뜨나 마나예요. 눈을 뜬 건 맞지? 눈꺼풀을 확인하고, 억지로 잠을 청했죠. 없던 폐소 공포증이 그때 생겨버렸어요. 창문은 있어야 해요. 차라리 더러워도, 빛이 잘 드는 방이 깨끗하고, 창 없는 방보다 낫죠. 훨씬 낫죠.


가장 끔찍한 숙소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어요. '하드라'라는 호텔인데 더럽고, 음침해서 유명해진 엽기적인 숙소였죠. 당시 우즈베키스탄은 숙소가 많지 않았어요. 외국인은 정부가 관리하는 숙소에서만 자야 했어요. 그런 숙소 중에 가장 저렴한 숙소였는데, 문을 열자마자 신발 한 켤레가 빈방 한가운데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거예요. 누군가가 투신자살하기 전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은 것처럼요. 변기는 엉덩이를 대고 앉을 용기가 안 날 정도로 더러웠죠. 침대 매트리스는 아주 살짝만 튕겨도 먼지들이 맹렬하게 솟구쳐요. 숙소 주인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그래도 손님인데 저에게 화를 내요. 여권 빨리 가지고 와. 돈 내. 수건 없어. 뭐든지 단답형이었어요. 그날 밤 큰 지진이 있었어요. 저야 몰랐죠. 다음날 뉴스를 보고 알았어요. 그런 무시무시한 방에서, 지진 난 줄도 모르고 숙면을 취한 저란 인간이 몹시도 자랑스럽더군요,  


그렇다고 저렴한 숙소가 다 더럽고, 열악한 건 아니에요. 규모를 키워서, 박리다매로 여행자들의 성지가 되기도 해요. 특정 숙소에 가기 위해, 특정 지역을 방문하는 거죠. 숙소에서 파는 셔츠를 입고, 나도 여기에서 잤다. 과시하죠. 여행자들도 어디를 여행하느냐에 따라 확실히 달라요. 유쾌한 여행자들은 인도와 남미에서 많이 만났어요. 유럽은 차분한 여행자들이 많았고요. 이스라엘과 일본은 자기네들만 묵는 숙소들이 전 세계에 꽤 많았어요. 외부인들과 선을 긋고,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거죠. 제가 눈치 없이 일본인 숙소에 머물렀다가 얼마나 구박을 받았나 몰라요. 사장은 아무 말 안 하는데, 매니저란 놈이 저를 그렇게 못마땅해하더군요.


최고의 숙소는 시리아의 마르무사죠. 시리아는 얼마나 기다려야 갈 수 있는 나라가 될까요? 마르무사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수도원이예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나 먹여주고, 재워줘요. 공짜로요. 사막 한가운데, 성처럼 우뚝 솟은 산이 있고, 벽돌로 지은 성이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요. 낮엔 수도원 개보수 공사를 돕지만, 의무사항은 아니에요. 매일 신선한 치즈와 살구 잼, 빵을 먹고,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잠들면 돼요. 지하 동굴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어요.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좋아요. 성당 내부 벽화는 무려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해요. 종교와 상관없이 미사는 충분히 즐거워요. 신부님이 바리톤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를 때면, 오페라 공연 안 부러웠죠. 그러고 보니, 신부님이 파바로티를 닮았네요. 제가 머물 때는 몇 년만의 폭설까지 내렸어요. 방에선 성능 별로인 난로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고, 창 밖으론 소리까지 들리는 함박눈이 쏟아졌죠. 그 공간이, 그 시간이 시였어요. 먹을 게 없어서, 여행자여서, 종교 박해를 피해(시리아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많은 차별을 당한다고 해요), 몸이 아파서, 채식주의자여서 온 사람들이 자기만의 매트리스에 누워, 고요함과 외로움을 마주해요. 절망도, 고통도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마르무사에 왔으니까요. 그곳에 오면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어요. 마르무사에 왔다고 고통이, 절망이 해결될 리야 없지만, 마르무사에 왔으니 됐어요. 내가 아 엄청난 서사시의 마침표 정도는 되는 것 같아, 저절로 우쭐해져요. 마르무사는 시예요. 모든 은유도, 상징도, 기교도 녹이는 거룩한 서사시예요. 모든 감정이 새살처럼 돋아서, 눈처럼 사라지는 곳이었어요. 언젠가 그곳으로 가야 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손가락이 움직이고, 숨이 쉬어질 때까지만 쓰고 싶어요. 세상 모든 변화에 민감한 채로 늙고 싶어요. 세상이 음악이고, 거대한 벽화임을 깨닫는 날을 기다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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