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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Nov 21. 2020

태국에서 받았던 문화 충격

이런 나라인 줄 몰랐어요 


1. 왕이 있는 나라라는 건 알았지만...


북한이 이렇지 않을까? 처음 드는 생각은 딱 그랬어요. 관공서는 물론이고, 집에도 왕과 왕 가족사진이 걸려 있어요. 지폐에도 현 국왕이 인쇄되어 있고요. 왕이나 왕족을 알현할 때는 무릎 꿇는 건 기본이고요. 거의 기다시피 해야 해요. 눈이 마주쳐서도 안 되고요. 축구장에 공주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모든 축구 선수와 심판이 경기장에서 일제히 무릎을 꿇더군요. 지금 젊은 친구들은 왕실에 반감이 많지만, 보통의 태국 사람들은 왕실에 대해 말하는 걸 불편해해요. 신에 가까운 존재였기에, 그런 존재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거죠. 태국에서 왕은 종교예요. 


2. 엽기적인 추위 사랑 


방콕 여행할 때 가벼운 재킷 같은 건 꼭 가지고 다니세요. 지하철(MRT)이나, 지상철(BTS) 에어컨을 말도 안 되게 세게 틀어요. 머리가 아프고,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요. 태국 사람들은 추위에 강한 건지, 짧게 입고도 세상 느긋해요. 태국 사람들은 추위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겨울이 없는 나라라서요.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면 가죽재킷도 입을 수 있잖아요. 상류층(태국에선 하이소라고 불러요)은 걸을 일이 없어요. 에어컨이 없는 세상엔 있을 일이 없죠. 그래서 꽁꽁 싸매도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그런 하이소에 대한 동경인지 몰라도, 태국 사람들은 쪄 죽는 날씨에 청바지에, 재킷까지 차려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등은 땀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요. 추위와 두꺼운 옷에 대한 사랑, 겨울이 없으면 겨울옷이라도 입자. 태국 사람들은 추위에 떨어 보는 게 소원이랍니다. 


3. 돌아가신 아버지 치아로 목걸이를?


태국 지인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화장을 했는데, 치아가 딱 네 개가 나오더래요. 5남매였어요. 큰 아들이 화장을 하는 날, 술을 마시고 뻗어버린 거예요. 평소에도 집안의  골치였어요. 장례식에 참석한 넷이 치아를 하나씩 나눠 갖고요. 뒤늦게 장례식에 참석한 큰 아들은 엉엉 울더랍니다. 아버지 그렇다고 저에게만 치아를 안 주시면 어떻게 하냐고요? 태국 지인은 그걸 작은 캡슐에 담아서 목걸이를 만들더군요. 효심 지극한 건 알겠는데, 부모님 치아까지 꼭 목걸이로 해야 하나? 저는 그렇게 죽은 이의 치아를 생전 처음 보게 됩니다. 참고로 태국 사람들 효심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여가 시간에 노부모와 식사하는 걸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길 정도로요. 



4. 태국 사람들이 이렇게 예쁘고, 잘 생겼어? 


평소에 태국 사람 예쁘다, 잘 생겼다 생각한 적 없어요. 태국 TV를 보면 깜짝 놀라요. 조각과 인형들이 걸어다녀서요. 너무 선이 굵어서, 요즘 우리나라 취향은 아닌데 이목구비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해요. 톱스타 연예인 중 절반 이상이 혼혈이에요. 우리보다 한 세대 일찍 국제결혼이 시작됐으니까요. 동남아시아에서 태국은 한류 다음 정도로 인기가 높아요. 태국 사람은 부티가 철철 넘치는 선남선녀로 통하죠. 우리나라가 더 잘났다. 아니다. 태국이 더 잘 났다. 이런 답 없는 논쟁은 무의미하고요. 머릿속에 있는 태국 사람 이미지는 태국에 오래 머물면 분명히 바뀔 거라고 확신해요. 


5. 증오 무능력자, 태국 사람 


태국에서 종교 테러 많이 일어나요. 남부 지방엔 이슬람 사람들이 많이 살거든요. 따로 독립하겠다며 폭탄 테러를 일으켜요. 지금까지 사람도 많이 죽었죠. 불교 신자들의 보복 사건이 일어나야 하잖아요. 그런 뉴스를 본 적이 없어요. 외국인들이 검문하는 보안 요원을 폭행하고, 중국인이 뷔페집에서 음식들을 싹쓸이하는 뉴스를 보면서도 그러려니 해요. 특정 종교나 특정 나라와 연결시켜서 미워하지 않아요. 저러면 안 되지. 그걸로 끝이에요. 아이를 둘이나 낳고 야반도주한 유명 남자 연예인도 연기자로 얼마든지 활동해요. 매장당하지 않아요. 사회 정의를 위해 너희들은 심판받아야 한다. 이런 흥분 상태가 상당히 약해요. 


6. 안 들리거든요? 모기 사운드 화법 


목소리가 너무 나긋나긋해서 잘 안 들려요. 소곤대는 수준이죠. 반대로 태국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나 중국 사람 화법은 위협적으로 느껴진대요. 보통의 대화도 싸우는 걸로 오해하더군요.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지면, 상대를 모욕하는 걸로 여겨요. 그러니까 태국에서 성량에 약간은 신경 쓰세요. 시선도 마찬가지예요. 힐끗대는 것 자체가 무례한 행동이에요. 관심이 가도, 고개를 절대로 안 돌리죠. 태국에서 뜨거운 시선 많이 느끼셨나요? 무례한 거 알지만, 그래도 보고 싶을 정도로 예쁘고, 잘 생겨서예요. 태국에서 연예인으로 데뷔하실래요? 


7, 말도 못 하게 어려운 태국 알파벳 


이슬람 문자도 마찬가지죠. 아예 모르니까 더 괴상하게 보이는 거죠. 태국 알파벳을 공부하면, 우리 한글이 얼마나 직관적이고 쉬운지 감탄할 수밖에 없어요. 모양만 어려운 게 아니라요. 발음이 같은데 모양만 다른 철자도 많아요. 묵음이거나, 성조가 갑자기 치솟거나,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까지 다 표시해야 해요. 모음도 자음 왼쪽에 있거나, 왼쪽과 위에 동시에 있거나, 아래에 있을 수도 있어요. 글자를 쓰는 게 아니라, 드로잉을 하는 것 같다니까요. 네, 저 십 년 넘게 살고도 태국말 까막눈이예요. 치욕적으로 부끄럽습니다. 게으른 저를 탓해야죠. 지옥 냄새나는 철자를 꼭 정복하고 말 거예요. 태국어를 정복하고 나면, 다음엔 베트남어에 도전하고 싶어요. 도전!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제가 살아 있다는 작은 증거죠. 살아 있으니, 씁니다. 죽어서는 편히 쉬겠습니다. 일절 안 쓰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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