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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Oct 22. 2020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태국 시위의 의미

신과 같은 왕은 필요 없다. 왕도 시스템 속으로 들어오라.


태국 반정부 시위대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어요. 저러다 말겠지. 제 예상은 빗나갔어요. 태국은 엄격히 말하면 불교국가가 아니라, 왕을 믿는 나라예요. 왕이 곧 신이죠. 슈퍼 히어로가 지구를 구하는 영화를, 히어로가 왕으로 바뀌어서 개봉하는 나라예요. 2017년 서거한 푸미폰 왕은 슈퍼 히어로이기는 했어요. 태국 북부 지방, 대마와 양귀비를 재배하는 마약 우범 지대를 커피와 유기농을 키우는 부유한 땅으로 바꿔놨어요.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면서 농작물에 피해가 가자, 본인이 인공 강우를 개발해요. 지금도 인공 강우 특허는 태국이 가지고 있다고 해요. 앨범까지 낸 재즈 연주자에 작곡가고요(제가 정말 좋아하는 태국 음악도 푸미폰 왕이 작곡했더군요), 요트 대회에서 우승한 전적도 있어요. 이런 왕이 전 세계에 몇이나 되겠어요?


우리나라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태국은 푸미폰 왕이죠. 그런 왕이 70년을 통치했어요. 1973년, 1992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는, 민주 정부의 손을 들어줘 군부 독재를 막아주기까지 했죠. 동남아시아에서 식민 통치를 비켜간 유일한 나라예요. 동족이 죽고, 죽이던 피의 역사를 피해간 동막골 같은 나라가 태국이에요. 문제는 지금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이죠. 보통 사람 수준의 지적 능력도 의심되는 사람이 왕의 외아들이란 이유로 왕이 돼요. 2019년에 네 번째 결혼을 합니다. 26세 연하인 근위대장 출신을 아내로 맞이해요. 2007년 셋째 부인이 비키니 차림으로 애완견 생일파티에서 엎드려 케이크를 먹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어요. 문신이 훤히 드러나는 나시 차림으로 젊은 여성과 쇼핑하는 게 독일에서 들키기도 했고요. 이런 사람이 왕이라는 이유로 법 위에서 군림하고 있어요.


태국 왕실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예요. 알짜배기 땅의 빌딩들, 우량 기업의 지분들을 엄청나게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45조 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어요. 태국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나라 중 하나예요. 주 수입이 관광업인데, 관광객이 뚝 끊겼으니까요. 그런데 왕실 예산은 16%(수천 억 규모) 늘렸어요. 왕이 비행기 쇼핑이 취미인데, 유지비만 1년에 750억 원입니다. 코로나로 방콕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시민들의 외출이 통제될 때 왕이란 사람이 독일에서 유유자적 애첩들과 여흥을 즐겼죠.


그래도 왕에게 시비를 거는 건 꿈도 꾸기 힘들죠. 왕이 신이니까요. 북한의 김일성 못지않아요. 여러분의 종교를 당장 부정할 수 있나요? 왕을 모욕하면 징역 15년을 살아야 하는데요? 젊은 친구들이 그래도 못 참겠다고 거리로 뛰쳐나온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난리가 났죠. 우리를 지켜준 사람이 왕인데, 부족하더라도 왕실 덕분에 이렇게 사는 건데, 너는 지금 우리의 신을 부정하고 있다. 지금 태국은 가족끼리 의절하고, 서로를 고발하고 있는 대혼돈의 시기예요. 그 어느 나라보다 가족 간의 유대를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가족끼리 등을 돌리고 있어요.


레드불 사건도 결정적 역할을 했죠. 태국의 박카스 레드불 다들 아시죠? 창업주 손자가 뺑소니 사고를 치고는 해외로 내빼요. 사망자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태국 경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려요. 재벌 손자는 감옥 근처도 안 가게 된 거죠. 유전무죄, 무전유죄. 억울하지만, 언제나 그랬다. 그런 자조 섞인 푸념이 젊은 세대에겐 안 통하는 거죠. 우리나라 세월호가 연상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내가 저 꼴이 될 수 있다.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약자의 편에 선 사람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는 거죠. 감정 이입을 피해자에게 할 것인가, 남 일이라고 생각할 것인가는 본인 몫이죠. 하지만 우리가 자동차 보험을 왜 들까요? 우리는 늘 불안하고, 자신의 안위가 보장받기를 원해요. 보수주의자들이 아무리 시체팔이라고 우겨도, 보통 사람의 공포는 반성이나, 자제의 대상이 될 수가 없어요. 생명 보험과 자동차 보험부터 해약해라. 이런 억지와 다를 게 없으니까요.


지금의 변화는 태국 역사상 가장 혁명적이에요. 자신의 모든 걸 걸고서라도, 변화를 이끌어내야겠다는 울부짖음이죠. 한국에서도 해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태국 젊은이들에게 우리의 촛불이 희망이자, 선례가 되고 있어요. 태국의 촛불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아이가 자신들의 종교를 파괴한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죽일 거라고, 총칼을 빼들 거라고 태국 친구는 걱정하더군요. 조마조마하기만 합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세상을 읽는 작은 창이 되고 싶어요. 제가 태국에 머무니까, 코로나로 답답한 분들께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여드리고픈 마음도 커요. 제 글로 조금이라도 답답증이 해갈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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