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리에서 잤다. 고기리에는 직원용 방이 세 개. 여섯 시에 일어난다. 직장이 집이다. 세 시간은 충분한 시간. 일단 브런치 일기부터 쓴다. 충분한 시간이 되니 글은 일곱 시 반부터 써진다. 십 미터 사무실로 8시 58분에 뛴다. 나는 주로 뛴다. 딱 맞춰서 나가니까 늘 아슬아슬. 집이 경기도라 그렇지. 먼 거리를 탓했다. 재택근무나 다름없지만 뛴다. 출근 거리도 엄연한 재산. 나는 대단한 부자다. 그런데 뛴다. 실제 가진 것이 나를 만들지 않는다. 시간도, 돈도 쓸 줄 아는 사람들의 몫.
방콕 맛집 책 제목이 정해졌다.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 원래 제목에서 단골집이 빠졌다. 편집장은 '단골집'이 거슬린다고 했다. 나는 단골집이 빠지면 손해라고 생각한다. 편집장은 부제에서조차 단골집이 빠지기를 원한다. 너무 정보책처럼 보일까 봐 그러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의 의견이 담기면 결국 물에 씻은 김치가 된다. 과정이 의미 있었다. 더 발랄하고, 장난스러운 파격은 내 돈 내고 해야지. 자기 돈으로 사업하는 사람이 훨씬 애가 타겠지.
아수스 젠북을 샀다. 13인치의 1kg 노트북이다. 145만 원짜리. 항공권도 구입했다. 120만 원. 이렇게 쓰고도 씨티은행 통장엔 돈이 있다. 최근 5년간 가장 부유한 순간. 5월 20일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날아간다. 원래 계획은 조지아부터였다. 코카서스 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은 비행기로 가야 도착비자가 나온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부터. 내 계획은 늘 대충대충. 아제르바이잔이라니. 내 삶에 아제르바이잔이라니. 단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모르는 나라. 놀라운 일들 뿐이겠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에선 내내 조지아만 기다리겠지. 조지아가 이번 여행의 핵심이다. 조지아에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그리워할 테고. 순간의 가치에 빠져 사는 사람이 진짜 여행자. 원래는 각 나라에 한 달씩 머물려고 했다.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이동. 어쩌면 조지아에서 두 달 머무를 수도 있다.
신경치료를 받는데 치과 의사가 자주 한숨을 쉰다. CT 촬영을 또 한다. 신경 줄이 잘 안 찾아진다고 했다. 움찔하게 되는 곳을 마구 후비는데, 내 손가락은 마디마디 힘이 들어간다. 죽음은 도대체 얼마나 멀리 있는 걸까? 몸을 떠나는 날은 훨씬 고통스럽겠지? 백 미터 달리기에도 이리 헐떡대는데 과연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 한참 멀었다. 죽음을 가볍게 날고자 한다. 참, 염치도 없다.
매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하다 보니 눈이 급격히 나빠졌다. 일부러 옛날 안경을 쓴다. 도수가 꼭 맞는 안경은 편해지고, 눈은 또 적응한 채로 더 나빠지고. 그래서 일부러 불편한 안경을 쓴다. 웬만한 글자들이 안 보이기 시작한다. 거의 눈 뜬 장님이다. 공포스럽다. 물구나무서기. 야매 치료사 박민우의 처방전이다. 얼굴에 너무 피가 없다. 그래서 눈이 나빠지고, 못 생겨지는 것이다. 물구나무로 평생 하반신에 몰린 피를 돌린다. 순수하게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은 아니고 재야의 숨은 고수들 생각을 이리저리 짬뽕했다. 매일 한 시간을 해보겠다. 55분에서 포기. 55분도 대단하다.
숙소 식당에서 김이사와 저녁밥을 먹었다. 김이사의 집은 대전. 평일은 고기리에서 잔다. 냉장고에는 맛있는 반찬이 가득. 꽁꽁 얼어있다. 냉장고를 수리했는데, 냉장칸으로 쓰던 곳이 냉동칸이 됐다. 얼어붙은 오이김치, 얼어붙은 멸치, 얼어붙은 어묵, 얼어붙은 밥. 밥은 너무 꽁꽁 얼어서 전자레인지로 10분 돌렸다. 냉장고 아래쪽을 정리하고, 반찬들을 아래쪽으로 옮긴다. 아래쪽에 방치된 옛날 반찬들을 정리한다. 김이사의 눈이 반짝인다. 안을 싹싹 닦고, 소독약을 뿌린다. 밥을 먹으러 왔지만, 밥 분위기가 아니다. 해결해야 할 일은 그때그때 해치운다. 열 살이나 어린 내가 참 민망하다. 김이사가 냉장고를 정리하는 동안 곰팡이가 활짝 핀 고추장을 비우고, 비닐봉지에 들어간 수상한 소스를 찢어서 털어낸다. 당장 밥 먹기는 틀렸다. 아홉 시에 허겁지겁 뛰어가는 사무실에 김이사는 여덟 시 반이면 와 있다. 비가 오면 카페 야외 테이블 물기를 닦고, 주방 냉장고 문짝을 뜯어내서 열리는 방향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꾼다. 형광등을 갈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운다. 에버랜드에 우수 직원상 2회 수상자다. 밤에 홀로 주방과 실내를 개선하는 건, '취미'라고 했다. 이력서를 낸 친구들 면접을 보고, 근로계약서를 검토하고,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심지어 녹음까지 하며, 그걸 다시 공유한다. 금요일엔 손님이 너무 몰려서 주방에서 접시를 닦았다. 직함은 이사지만, 어디에서나 보인다. 신이다. 혹은 아이언맨. 나는 일종의 압박감을 느낀다. 나도 여덟 시 반까지 가야 하나? 그러지 않기로 한다. 아예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진다.
잠들기 전 몸이 몹시 가렵다. 가벼운 식중독 증세거나, 아니면 빈대? 긁다 보니 가라앉는다. 멀쩡할 때 감사하고, 불편할 때는 당연하다. 40대 후반, 내 몸이다. 물구나무서기를 10분 더 하기로 한다.
PS 글이 날아갔다(고 생각했다). 극적으로 복구됐다. 아침부터 신비체험이라니. 그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