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랑입니다. 이런 날도 오는군요
2년 전이었을 거예요. 브런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다 받아주는 게 아니더군요. 허, 참! 그래서? 천하의 박민우가 신청까지 해야 해? 떨어지면 어쩌나 마음 졸이면서? 마음만은 노벨상, 퓰리처상 다 씹어 먹은 싹퉁머리 글쟁이는 고깝기만 하더군요. 그래, 신청해준다. 해줘. 특혜를 바라고 산 적은 없지만, 책을 열 권이나 냈으면 알아서 모셔야지. 무임금으로 글이나 쓰겠다는데, 허락까지 받으라니? 까이지 않고, 한 번에 오케이 했으니, 큰절이라도 할까? 브런치 마마? 성은이 망극 좀 하긴 합니다.
다 죽었어. 브런치는 박민우가 등장하기 전과 후로 나뉠 거야. 글도 잘 써. 성실하기까지 해. 나의 라이벌을 이 좁은 한국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눈치 없이 구독자가 폭증하는 것도 볼썽 사나운데 말이죠. 글 좀 쓴다고, 생태계 파괴자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초원에 딱 한 마리 수사자가 되는 건 어쩐지 쓸쓸하잖아요. 무자비하잖아요. 어라? 그런데 왜 이렇게 조회수가 안 나오는 걸까요? 구독자는 하루 한 명, 두 명. 공치는 날도 많고요. 무자비한 능력치 만랩의 수사자는 당황하기 시작해요. 토끼나 사슴들이 쓴 글을 읽기 시작해요. 남의 글까지 읽어야 해? 나야, 나! 박민우라고오오오. 글쟁이는 자존심이죠. 남이 몰라줘도 자기 잘난 맛으로 사는 거죠. 가난한 글쟁이 팔자, 겸손하기까지 해야 하나요? 브런치에 왜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이 많아요? 기구한 사연, 솔직한 모습, 깔끔한 문장. 브런치 사관학교라도 있는 건가요? 초원의 쭈그리 미어캣이 되어서는 도망칠 궁리부터 했죠. 내 책에 열광했던 독자들에게 파리 날리는 꼴을 들키고 싶지 않았어요. 실력자들 사이에서 진검승부를 하겠다며 우쭐대던 저는, 저에게 진검이 없다는 걸 깨닫고 혼이 다 나가요.
어쩌긴요? 쭈글이가 되었으니, 쭈글이답게 열심히 썼죠. 성실함으로라도 승부하자. 매일 글을 쓰겠다는, 황당한 약속을 스스로 해요. 지킬 수나 있을까? 이놈의 브런치가 얼마나 얄미운 줄 아세요? 해도 해도 너무 방문자 수 안 나온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쯤 어딘가에 노출시켜 줘요. 다음이나 카카오 스토리 메인 페이지에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로 방문자 수가 폭증해요. 하루 삼십만 명 이상이 다녀간 적도 있으니까요. 삼십만 명이 방문한 날이요? 기고만장해져요. 그럼 그렇지. 이 기세로 쭉 가는 거야. 기세는 무슨 기세요? 다음 날, 다다음 날이면 다시 홀쭉하게 쪼그라든 방문자들이 흉가를 드나들죠. 그런 과정을 몇 번 겪고 났더니요. 내성이 생겨요. 그러건 말건, 내 갈 길 간다. 하아. 이게 브런치가 노린 큰 그림이겠죠? 카카오 주식 쟁여 놓으세요. 의외로 굉장한 AI 꽁꽁 숨겨 뒀을 거예요. 닳고 닳은 늙은 작가 길들이는 것 좀 보세요.
오늘 총 방문자 수 200만 명을 찍었어요. 구독자도 1,959명까지 늘었네요. 이 기세로 올해 안에 2천 명은 껌이겠죠? 브런치야, 내가 속을 줄 알았냐? 내일이면 다시 재투성이 아가씨로 돌아가요. 열심히 물걸레질하고, 비질하면서 주제 파악하며 살아야죠. 브런치에 글 연재하시는 여러분. 저보다 더 많은 구독자와 방문자를 자랑하는 분도 계시겠죠. 제가 부러우신 분들도 많으시죠? 저도 꿈만 같아요. 그런데 꿈처럼 좋은 기분은 아니에요. 잠깐 신나고, 금세 보통의 기분으로 돌아와요. 어차피 저는 죽을 때까지 써야 해요. 이런 날은 잠시의 마약이죠. 잠깐 기분 좋고 말아야지. 계속 마약을 찾으면 되겠어요? 구독자님들도 소중한 각각의 소우주예요. 숫자로 세는 성냥개비가 아니죠. 그 소우주들과 제가 연결되는 신비 체험인 거죠. 이천 명이건, 스무 명이건 달라지지 않아요. 구독자 숫자는 작은 자극 정도로 생각하세요.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지 마세요. 그런 건 없어요. 심지어 돈도 안 돼요. 돈이 되는 일도 허무하고, 지겨울 때가 있어요. 돈이 안 되는데, 허무하지도 않고, 지겹지 않은 일도 있어요. 의외의 모순은 큰 재미죠. 저라는 게으른 인간이 이렇게 열심히 써 내려가는 것 좀 보세요. 인생 살아볼 만하다니까요. 의외의 세상에서, 더 의외의 나를 만나는 즐거움요. 짧은 인생 자주 놀라고, 신기해하며 살자고요. 매일 글을 쓰는 제가, 저는 신기합니다만.
PS 매일 글을 씁니다. 호객 행위는 하지 않아요. 부담감 주고 싶지 않아서요. 제가 잘 쓰고, 잘 살면 어련히 알아서 다가올까요?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곳은 날카롭기만 하면 돼요. 언젠가는 뚫릴 테니까요. 늘 갈고닦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