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구독자가 2천 명을 돌파했어요. 지금 2천5명이네요. 며칠 전만 해도, 올해 안에는 힘들겠군. 구독자가 한두 명씩 느는 속도라서 2천 명 고지는 멀기만 했거든요. 인스타그램은 1500명 대에서 몇 년째 줄다가, 늘다가 하는 수준이라서요.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니, 그런가 보다 했어요. 이천 명이 되면 이쯤 왔군, 삼천 명이 되면 또 이쯤 왔군. 숫자를 핑계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거죠. 그런데 오늘 덜컥 2천 명이 넘어 버리네요. 저에겐 까마득한 숫자였어요. 구독자가 많은 작가들을 보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실용정보로 무장을 했더라고요. 취업도 하고 싶고, 전문가에게 위로도 받고 싶고, 트렌드도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저의 글은 잡담처럼 들릴 테니까요. 저와의 약속이에요. 2천 명이 되는 순간에, 안부 인사라도 드려야겠다. 그래서 이렇게 인사드려요.
안녕하세요. 구독자님들
평소에 제가 댓글도 잘 안 달고 무심해요. 달다 보면, 다 달아 드려야 한다. 이런 강박증이 좀 있어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또 열심히 달아요. 웃기죠? 열심히, 감사히 댓글 읽고 있어요. 다시 한번 또박또박 전하고 싶어요. 감사의 마음을요. 글을 쓰는 건, 일종의 영업이에요. 책이 안 팔린다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는 늘 있잖아요? 저는 그런 베스트셀러 작가가 못 됐어요. 갈수록 판매 부수가 주는, 써서는 안 되는 작가가 됐죠. 책만 써서는 답이 안 나오더군요. 반성부터 했어요. 흐름을 못 쫓아가니까, 안 팔리는 거예요. 책 안 읽는 시대라지만, 서점이, 출판사가 다 망한 건 아니잖아요? 교보문고에 바글바글 사람들 있잖아요. 국공립 도서관도 나름 큰손이에요. 추천도서 한 번이 안 되더군요. 외면받았어요.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저를 탓해야죠. 네, 무능한 작가입니다.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관종 짓이죠. 자기만족이 우선이면, 일기장에만 모셔뒀겠죠. 네, 전 관종입니다. 계획은 따로 있었어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철저히 신비로워지겠다. 얼굴 없는 작가. 도대체 박민우가 누굴까? 궁극의 관종 짓에 흐뭇해하며,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에서 술주정을 하려고 했죠.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플랜 B를 가동시켜야죠. 신비주의 날아갔으니, 졸라 열심히 쓰자. 모든 근면 성실한 노동자를 떠올리며, 글 노동을 시작했어요. 글이 별로여도, 애쓰는 모습에 감동하시오. 나름의 전략이었죠. 쉽게 먹힐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쉽게 먹히면, 감동도 없고요. 최소 십 년 봤어요. 십 년간 미친 듯이 써재끼는 모습에 서서히 감동 좀 해주십사. 매일 굽실굽실, 뚜벅뚜벅 영업을 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낚이신 겁니다. 저의 어설픈 전략에 실망하셨죠? 매일 태국 방콕의 코딱지만 한 방에서 글을 써요. 제 앞엔 늘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요. 희망이 없고, 자주 아프고, 자주 체하고, 낙도 없고, 친구도 없는 사람이요. 저와 비슷한 사람을 앞에 두고 조잘대요. 손가락은 거들뿐이죠. 우린 왜 이 세상에 태어난 걸까? 물어요. 웃기만 하죠. 저도 웃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왜 태어났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본능적으로 삶을 유지하고 싶어 해요. 애틋하죠. 늘 살고 싶은 건 아닌데, 죽고 싶지는 또 않아요. 가끔 행복하고, 대체로 재미없어요. 잘난 사람의 위로는 고맙지만, 속은 것 같아요. 모멸감을 느껴요.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렇게 묻고, 글을 써요. 부담은 없어요. 대단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거니까요. 우리끼리만 통하는 이야기면 돼요. 공감이면 족해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만으로도 감사해요. 매일 그렇게 조잘대요. 그게 글로 옮겨지는 거죠.
여러분들은 저와 연결돼 있어요. 제 영업에 말려드셨지만, 저 역시 말려들었어요. 애초의 계획은 자주 까먹고, 글에 몰입해요. 이 순간엔 저와 여러분뿐이에요. 우리는 각자의 빈 야쿠르트병을 들고 있어요. 물론 실로 연결되어 있죠. 그 가느다란 실로, 저의 이야기가 전달돼요. 귀 기울이지 않으셔도 돼요. 매일 영양가 있는 소리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가끔 볼품없는 제 영업장에 들르시면, 뭉근히 따뜻해지는 야쿠르트병 무전사가 될게요. 그 말씀드리려고, 지지부진하게 길게 썼어요. 숫자에 놀아나고픈 마음 없지만, 2천 명이란 숫자에 자축하는 재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이런 날도 오는군요. 이런 날이 와요. 대학교 합격할 때,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 제대했을 때 느낌과 비슷해요.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왔어요. 신비체험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PS 매일 글을 씁니다. 분명히 인간이 이해 못하는 질서가 있을 거예요. 그걸 알 수 있을까요? 이렇게 열심히 쓰다 보면요? 허무맹랑한 어떤 경지를 꿈꿔요. 완벽하게 비우고, 완벽하게 가득 찬 어떤 상태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