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첫사랑 1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by 모노


초등학교 6학년의 나와 신은 텅 빈 교실에서 글을 썼다. 짙은 초록 칠판에 커다랗게 적힌 명사 하나를 바라보며 뭐라도 떠올리려 애를 썼다. 우리는 학교를 대표해서 어떤 글쓰기 대회에 나가게 되어 있었다. 나는 우연히 군 단위 규모의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서, 신은 그냥 잘 쓰는 아이라서 선택되었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매일 모였다. 글쓰기 선생님은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중년 여자분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책상에 앉으면 봄이나, 학교, 전화, 같은 성의 없는 단어를 칠판에 적고 사라지곤 했다. 둘만 남은 교실에서 딴 짓을 할 법도 한데, 대화한 기억이 거의 없다. 교실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 났으려나. 나는 할 일은 꼭 해야 하는 고지식한 아이였으므로 숙제처럼 써 내려갔던 것 같다. 내가 쓴 문장을 읽으며 '모노야 이렇게 쓰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했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잘하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진 않았던 것 같다.


한 학기가 지나고 둘만의 방과 후 수업이 끝났다. 대회에서 신은 대상을 받았고, 나는 참가상 격인 장려상을 받았다. 우리는 언제 그런 시간을 보냈나 싶게 데면데면한 채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생이 되어 복도에서 마주친 신이 한마디를 툭 던지며 지나갔다. "누가 널 좋아하는데 너는 절대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일걸." 그래서 뭘 어쩌라고. 나는 신이 웬 친한 척인가 싶었다. 며칠 뒤, 등굣길에 학교 건물 입구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3층 교실 창문에서 한 무리의 남자애들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한준현! 모노 지나간다. 모노야 한준현 여기 있어!" 한순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황급히 실내화를 갈아 신고 교실로 들어갔다. 신이 말한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 초등학교 동창 한준현이라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신과는 가끔씩 마주치면 '한준현이랑은 잘 돼 가냐?' 같은 말을 일방적으로 듣는 관계가 계속됐다. 잘 돼 가기는... 한준현은 초등학교 때부터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였다. 신이 한준현을 끌어다가 내 앞에 세워둔 적도 있었는데 더 어색해질 뿐이었다. 한준현은 우리 집 편지함에 편지를 두고 가고, 오가다 만나면 얼굴이 벌게지면서도 끝내 사귀자는 말을 하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준현이나 나나 똑같았다. 누군가를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을 상상하지는 못하는, 그냥 그런 중학교 1학년생들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A와 단짝이 되었다. A의 재밌는 점은 금사빠라는 점이었다. 그때까지 현실의 남자애들에게 도통 관심을 못주던 나와 달리 A는 3학년 1년 동안에만 a와 b와 c와 d를 좋아했고 매번 고백했다. 그때마다 A는 나를 메신저로 이용했다. 우리는 보안을 위해 남자애들을 별명으로 불렀는데, 별명은 아주 일차원적으로 지었다. a는 이름에 지읒이 들어가서 (쾌걸) 조로였고, b는 병아리처럼 생겨서 얄리, c는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마운틴이었다. 그리고 나는 d를 손쉽게 벌레 새끼라고 지었다. d가 신이었기 때문이다. 한준현 일로 당한 게 있어서 그랬는지 모욕적인 별명으로 부르고 싶었다. A는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을 벌레 새끼라고 부를 순 없다고 버텼다. 우리는 '버그'로 타협했다.


A는 나와 신이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점을 반가워했다. 한 학기 동안 같이 글쓰기를 했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럼 많이 친한 거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내가 신과 친한가. 나는 안 친하다고 말했다. A는 그날 편지 전달을 명했다. 나는 신의 교실로 가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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