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여동생
제 할 말만 하기 바쁜 우리라 좋아
토이의 '거짓말 같은 시간'을 들으며 출근했다. 코로나로 작년부터 시작된 시차 근무에서 나는 8시 출근 조를 선택했다. 아직 어스름한 아침과 거짓말 같은 시간은 꽤 괜찮은 출근길을 만들어줬다. 7시 반의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언제나처럼 혼자 빵을 먹으며 이메일을 체크하고, 쌓인 서류들을 들추기 시작했다.
오전 중으로 할 일을 마무리하며 한숨 돌리는데 2021년 업무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회람이 돌았다. 연초마다 회사는 그 해 업무 목표를 쓰고 계획대로 했는지를 연말에 확인하게 했다. 작년엔 무슨 계획을 세웠더라… 작년 파일을 불러와 읽었다. 꾸역꾸역 채웠구만. 나는 올해도 꾸역꾸역 채워나가려 했다.
그런데 별안간 성질이 났다. 이게 무슨 신종 고문인가. 주는 대로 일하고 하라는 일만 하는데 무슨 놈의 계획서인가 싶었다. '예예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한다니까요'라고 써버릴까 하는데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서점 갔다가 주차권 잃어버리고, 필라테스 옷 뒤집어 입고 한 걸 끝나고 알았어. 우울해.'
핸드폰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가 동생에게 전화했다.
"아침에 토이 노래 거짓말 같은 시간 들으면서 출근했는데 계절이랑 너무 잘 어울려서 기분 좋게 출근했다? 근데 바빠 죽겠는데 올해 계획을 세우라잖아. 이런 걸 왜 시키는 거야?"
나는 동생이 전화를 받자마자 내 뿔난 상태를 다다다 털어놨다.
동생은 "거짓말 같은 시간? 나도 어제 그 노래 들었는데! 언니 싱어게인 때문에 들은 거지?" 물었다.
"어 너도 봤어? 17호 진짜 잘했는데 떨어졌어. 너무 아쉽다. 내가 응원했는데!"
"언니 유희열 진짜 천재 아냐? 어떻게 이 노래를 잊고 있었지? '니 어른스러운 결정 말없이 따를게' 그 부분 너무 좋잖아."
"난 '너의 미소 널 기다리며 서성대던 공간과 그때 내 머리 위에 쏟아지던 햇살' 그 부분이 너무 좋더라. 눈에 그려지잖아 그 장면이."
"맞아!"
"근데 주차권은 왜 또 잃어버려."
"언니 나 진짜 왜 이 모양이지. 우울해."
"우울해하기엔 소소하고 웃긴데? 나 추워서 들어가야겠다. 끊어."
자리에 돌아와 나는 예의 수용적인 직장인 모드로 '예예, 고분고분'을 대신할 말들을 찾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1n년째 이러고 있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