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필라테스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by 모노


토 삭스도 없이 대충 입은 나와 달리 그녀는 완벽한 차림이었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의 화장도 완벽했다. 내 인바디 검사를 보면서 어디 아픈 곳이 있는지 얘기를 나눴다. '필라테스를 해'라는 동생의 잔소리를 500번쯤 들은 후에 실행에 옮긴 참이었다. 안 아픈 곳을 찾는 게 빠를 것 같았지만 일단 어깨 운동부터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전신 거울이 있는 곳에 나를 세우고 호흡법과 시작 자세를 알려줬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양손을 하늘로 쭉 뻗어서 몸을 길게 만들고, 숨을 내쉬면서 허리를 숙이고 척추를 동그랗게 말면서 손은 툭 떨어뜨리세요. 손이 바닥에 닿으면 무릎을 조금 구부리시고요. 잘하셨어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몸을 짚으며 힘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을 알려줬다. 동작이 바뀔 때마다 시범을 보이고 내 움직임에 구령을 붙였다. 목소리가 공기 같았다. 그 공간에 흐르던 음악 같기도 했다. 오로지 내 몸에 관한 대화만 나누며 한 시간을 보냈다. 삼만 원짜리 체험 수업이 이렇게 완벽해도 되나. 어쩜 이렇게 설명을 잘하지? 분명 질질 끌려가는 기분으로 왔는데 온몸이 뻐근하면서 시원했다. 기분도 좋아졌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오늘 어디 불편한 곳 없으세요? 지난번에 운동하고 불편한 곳은 없었었요?" 그녀는 따뜻한 차를 주면서 물었다. 어떻게 저렇게 몸매가 예쁠 수 있지. 운동복은 어디서 저렇게 예쁜 걸 골랐지. 나는 불편한 곳 없었다고 대답하면서 그녀의 몸을 바라봤다. 몇 번을 봐도 예뻤다. 팔과 다리는 길고 가는데 왜소하지 않았다.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내려오는 선이 곧았고, 엉덩이의 굴곡은 힘이 있었다. 지금껏 현실에서 본 몸 중에 최고였다.


"선생님 몸매는 타고난 거죠?"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니에요. 필라테스 열심히 해서 만든 거예요."

"그럼 저도 선생님처럼 될 수 있어요?" 살기 위해 운동하는 주제에 이렇게 묻기도 했다. 다른 직업군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도 같다. 몸을 드러내는 작업복을 입고 모든 일의 수단이 몸이라는 게 호기심을 일으켰다. 그녀는 동작을 말로 바꿔 설명하는 재능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주문하면 배에 힘을 주고 어깨를 내리고 날개뼈를 모았다. 배와 다리를 벌벌 떨면서도 그녀가 '조금만 더, 두 번만 더'를 외치면 견뎌냈다.






오늘 센터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잠깐 자리를 비우셨나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새 선생님이 서 있었다. 원장은 그녀가 아파서 수업에 못 온다고 했다. "오늘만인 거죠?" 내 질문에 원장은 그녀가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새 선생님과 운동을 했다. 새 선생님은 말하면서 동작을 설명하느라 숨이 차 했다. 나도 덩달아 숨이 찼다. 새 선생님은 너무 말랐다. 그녀의 에스라인이 떠올랐다. 새로운 동작을 하느라 손목이 아팠다. 그녀는 내가 엉뚱하게 힘을 써서 아파하면 바로 알아챘는데. 필요한 도구를 가져와서 어떻게든 확한 동작을 이끌어 냈는데. 운동하는 내내 그녀를 생각했다. 운동을 마치고 다음 달 결제를 해야 했는데 망설여졌다.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센터를 나섰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몰랐다. 어디서 그런 선생님을 만날 수 있나. 공기 같은 말투와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그립다. 일대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서 운동만 했다. 사적인 얘기는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친밀한 기분이라니. 이렇게 서운하다니.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그래도 정말 그렇다. 많이 아픈 게 아니었으면. 수술을 해야 해서 돌아오는데 오래 걸릴 거라는 원장의 말은 그녀가 관둔 걸 둘러대기 위한 말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쓰는 와중에도 배에 힘을 주고 갈비뼈를 모 호흡 본다. 녀와 나누던 몸의 대화가 그립다. 그녀를 많이 좋아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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