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하루를 펴준 소고기 한점과 이승윤

어떤 직장인

by 모노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이번 달 내내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음악이라도 들을까 하다가 사람 목소리도 버거울 것 같아 그만뒀다. 그러다 주위 소음이 싫어져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이라는 연주곡을 플레이했다. 앉은 자세에서 양손을 양쪽 엉덩이 옆에 늘어뜨리고 등과 머리를 좌석 뒷받침에 기댔다. 어깨와 허리에 힘을 빼 보았다. 그렇게 잠들었다.

집에 들어오니 친정엄마는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오늘은 남편 생일이다.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가는데 방문에 은수가 만든 가랜드가 보였다. "엄마! 아빠한테 편지 쓴 것도 봐줘."


엄마에게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쉬겠다고 말하고 침대에 누웠다. 은수가 아이패드를 보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누워야 했다. 그렇게 더 잤다.


남편이 와서 같이 생일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껐다. 엄마는 부지런히 소고기를 구웠다. 입맛이 없어 심드렁하게 한 점 입에 넣고 놀랐다. 뭐지? 너무 부드럽고 맛있는 거다. 한 점 더 집어 먹었다. 역시 부드럽다. 구운 마늘을 얹어 또 먹었다. 뭔 일이지.. 정말 맛있네. 밥이 넘어갈까 싶었는데 잘도 넘어갔다. 입에 넣고 씹고 감탄하다 보니 밥이 사라졌다. "배 좀 까 봐." 그대로 양치질하고 누우려는데 엄마가 배를 까라고 했다. 난 먹기 싫은데.. 그래도 깠다. 까면서 먼저 내 입에 한 조각 넣었다. 어 맛있네?


남편에게 은수를 맡기고 마침내 누웠다. 은수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은수는 엄마가 하나 빼고 다 좋아."

"하나가 뭔데?"

"회사 가는 거"


회사를 관두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 입에 들어가는 밥도 친정 엄마 찬스를 쓰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회사 다니는 거 밖에 없는 기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n년간 이 일만 했다. 관두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될까 겁난다. 좋은 고기와 제철 과일로 회복된 기분이 다시 구겨지고 있다.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어요
구겨진 하루를 – 이승윤


삶에서 회사 비중을 줄이고 다른 영역을 늘리자는 올해 계획은 또 산으로 가고 있다. 나는 곧 잠들었다. 복잡한 마음과 지친 몸은 상관없이 밤새 충전 되겠지. 내일 또 일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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