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모습의 아빠였으면 어땠을까

by 모노


딸 은총이가 아직 누워만 있는 아기일 때 시작됐다. 나는 주방에서 분유를 타고, 남편은 은총이를 안고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슬쩍 보는데 둘이 참 행복해 보였다. 순간 ‘나의 아빠도 저런 얼굴로 나를 바라봤을까. 저렇게 다정한 말들을 내게 쏟아냈을까’ 생각했다. 나는 분유를 마저 섞었다. 얼마 후, 안방에 누워있는데 거실에서 놀이를 하는 남편과 은총이의 소리가 웅얼웅얼 들렸다. ‘은총아 너는 좋은 아빠를 가졌구나’.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누가 마음을 헤집는 기분이다.


나의 아빠는 동네에 소문난 주정뱅이였다. 공부 좀 한다고 잘난 척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내가 버둥대며 쌓아 올린 것들은 아빠 손에 던져지는 살림살이와 함께 매번 무너지곤 했다. 나는 그런 아빠가 보기 싫어서 새벽 두 시까지 독서실에 처박혀 있다가 집에 오곤 했다. 나도 교복을 줄여 입거나 화장을 하고 싶었다. 만화책과 무협지를 읽고, 아이돌 어떤 멤버가 내 남편이라며 철없이 방방 뛰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질 않았다. 반듯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날은 친구 영진이와 저녁을 먹으러 학교를 나와 동네를 걷고 있었다. 검은 차 한 대가 우리 옆에 천천히 서고 익숙한 실루엣이 차에서 내렸다. 아빠였다. 어디 가냐고 물었다. 밥 먹으러 간다고 대답을 했던가. 아빠는 지갑에서 오천 원을 꺼내 주고는 차를 타고 갔다. ‘오천 원이라니. 친구와 밥 먹으러 간다는데 고작 오천 원을 주고 가다니’라는 생각과, 아빠가 적어도 열흘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영진이가 말했다. ‘왜 이렇게 얼었어?’ 수없이 깎아내리고 무시했지만 현실에서 마주하면 나는 얼어붙었다. 잘난 척해봐야 소용없었다. 나는 보통의 십 대였다.


돌이켜보면 아빠는 내 머릿속에 계속 있었다. 기억이 머리에서 심장으로 내려와 마음을 쿡쿡 찌를 때면 은총이와 남편을 보고도 아빠를 떠올렸다. 지금의 나라면, 친구가 아빠와 북해도에 간 이야기를 하거나, 아빠가 사준 거라며 버버리 스커트를 보여줘도 움찔하지 않을 텐데. 조용한 사무실에 갑자기 아빠가 나타나 난동을 피우진 않을까 걱정하지도 않을테고.


나는 더 이상 아빠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는 것이 목표인 십 대가 아니다. 그래 봤자 내 마음은 이제 막 스무 살 정도의 상태가 아닐까. 그래도 방법을 찾아간다. 마음이 동요할 때면 남편에게 얘기한다. 위로에 서툰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한다. 나는 ‘그냥 안고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돼’라고 말한다. 남편은 주문대로 해준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아빠가 아니라며 땡깡을 부리는, 이제 막 스무 살을 지나는 내 마음은 은총이의 아빠에게 그렇게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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