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상담을 다녀온 뒤 힘을 내서 병원을 찾았다. 처방받은 약이 효과가 없는 것 같으니 약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약을 바꾼 뒤, 신기하게도 졸리지 않고 기분이 나아졌다.
한참 우울해서 고생하다가 약을 먹고 좋아진 적이 있었다. 무기력을 뚫고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 이유는 그 기분을 기억해서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았다. 임신 이후 처음으로 입맛이 좋았다. 글쓰기든 뭐든 잘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잘 웃었다. 뭐 신나는 일 있냐는 말을 들었다. 당시 내 기분과 상태가 그랬다. 그때 나는 보통 사람들이 평소에 이런 기분으로 사는구나를 처음 알았다. 굉장히 약이 올랐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림자처럼 살았다니.
(언제나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다들 이렇게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니. 내 지난 시간을 돌려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기분을 꼭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짐과 상관없이 뇌리에 박혀서 잊혀지질 않는다. 우울할 때면 그때의 마음 상태를 떠올려보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 나는 신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네 번째 상담을 갔다. 지난 회차에서 하던 부모님과 배우자와 나의 장단점에 관한 이야기를 마저 나눴다. 상담사는 오늘은 내 무의식으로 들어가기 위한 그림을 그리자고 했다.
집에 와서 대충 따라 그린 그림
대충, 강-밭-길-돌-산-집-나무-꽃-사람-동물의 순으로 그리게 했다. 그리면서도 이게 뭘 보여줄 수 있나 믿음이 가질 않았다. 티브이에서 누가 하는 걸 볼 때도 저게 큰 의미가 있겠어? 라면서 의심을 거두지 못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서 그림을 그리면서 몇 번을 상담사에게 물었다. 상담사는 웃으면서 지금 내 무의식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갸우뚱한 상태로 끝까지 그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는 참 좋구나 생각했다. 아이와 그림일기를 쓸 때 색칠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리는 게 왜 좋을까. 상담사에게 얘기했더니. "oo님은 경직되어 있어요. 표현이 너무 없어요. 즐거운 일이 있으면 웃고, 슬픈 일이 있으면 울고, 화나면 내고, 그런 감정의 오르내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요. 본인 얘기를 하면서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게 말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 같지만 아니에요. 몸으로 말하는 언어가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상담사는 내가 몸의 언어가 너무나 부족한데 기질은 모험을 좋아하고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몸으로 하지 못했던 표현들을 글쓰기나 그림으로 표출하는 게 즐거운 거라고 알려줬다.
그동안 내가 자의식이 너무 강한 거 아닐까. 그래서 내 얘기를 쓰고 또 쓰길 원하는 관종이 된 것 아닐까 걱정했었다. 글에서 '나는'이나 '내가'라는 말이 너무 거슬려서 일일이 찾아서 지우기도 했던터라 상담사의 말에 안심이 되며 고마웠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몸의 언어가 부족한 사람이 되었나. 이 질문은 첫 상담 때부터 받았고 그 이후에도 몇 번을 받았다. 근데 정말 모르겠다. 언제부터 경직된 채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림 얘기로 돌아가서,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멀리서 감상하면서 질문을 받았다. 산 너머에는 뭐가 있을 것 같나, 집은 튼튼해 보이나, 나무는 몇 년이 되었나, 나무도 튼튼할 것 같나, 사람은 기분이 어떤가, 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뭘 것 같나, 등등.
상담사가 보기에 가장 두드러지는 건, 내가 하고 싶은 게 아주아주 많아 보인다는 것과, 해결되지 않은 감정적인 문제가 많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말을 듣고 바로 떠오르는 감정적인 문제가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
정말 바로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신입 사원 시절에 성추행을 당한 일이었다. 친한 여자 동기였던 A와 퇴근 후 술을 마셨다. “대학 때 선배가 온다네. 괜찮지?” 나는 괜찮았지만 그 선배를 보지는 못했다. 술을 못 마시는 내가 그가 도착하기 전에 뻗었기 때문이다. 잠결에 “저기요, 얼굴 좀 보여주세요”라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그리고 누군가 몸을 만지는 기분에 깼다. 일어나고 싶었는데 되지 않았다. A는 택시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나는 뒷좌석에서 그의 무릎을 베고 누운 자세였다. 나는 A의 뒤통수에 대고 ‘oo아 이 사람이 날 만져’ 했다. 반응이 없었다. 광화문에서 일산으로 가는 내내 ‘oo아 이 사람이 만져’라고 말한 것 같은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대답이 없었다.
다음 날 눈을 떠 준비하고 출근하는 내내 생각했다. ‘남자가 내게 한 일은 꿈이었나. 내가 한 말은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왔나.’ 점심시간에 A에게 남자의 번호를 물어 전화했다. “어제 만났던 oo이 친구인데, 나한테 할 말 없어요?” 물었다. 남자는 곧 “미안합니다” 했다.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어설픈 사과를 듣고 나서야 실감이 나 울분이 치밀었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게 된 것 말고는 똑같은 척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남자에게 이는 화와, 내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A를 향한 더 큰 화를 떠올리면 언제나 A와 내 관계가 망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런 채로 우정이란 걸 유지하면서 사는 게 나란 인간이다.
이 얘기를 상담사에게 하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울분이 일었다. 상담사는 나 대신 화를 내주었다. 내가 A에게 하지 못한 질문도 대신해주었다. 택시 안에서 내가 한 말 들었어? 그 남자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아?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봐? 내가 왜 너의 무릎이 아니라 그 남자의 무릎을 베고 있었던 거야?
그 얘기를 시작으로 사실 내가 화를 잘 못 낸다는 점, 누군가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느니 내가 더 하고 마는 일이 잦다는 점, 불화를 견디지 못한다는 점 등을 일화와 함께 나누었다.
이런 이야기들로 무기력의 이유가 조금 드러난 것 같았다. 사람은 자아가 생기고 자라면서 어른으로서의 역할들(남으로부터 자신을 돌보기)을 해야 하는 데 그걸 못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무기력이 생긴 것 같다. 몸의 언어가 부족해진 것도 같은 이유 같았다. 좌절되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몸의 언어를 포기하게 되는 식이다.
그 외에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더 나눴고, 마지막으로 숙제를 받았다. 나를 돌보는 일 해보기! 기분 나쁘면 나쁘다고 말하고 화내기, 좋으면 웃기! 이걸 숙제라고 적고 보니 내가 똥멍청이 같다. 좋으면 웃고 화나면 화내는 것도 못하는 바보. 그래도 나아지리라고 생각하고 쓴다. 나 같은 똥멍청이가 또 있다면 도움이 될까. 똥멍청이지만 영원한 똥멍청이는 아닙니다. 똥멍청이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