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결국 우리를 살린다

고갯길을 미워했던 나

by 모노

고등학교 때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집에 살았다.

큰 도로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길을 건너면 주유소가 있었다. 주유소 옆 길로 이어지는 고개를 아침 저녁으로 넘으며 학교를 다녔다.


나와 상관없는 거리로 그곳을 지난다면 아 경치 좋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고갯마루에서 풍경을 감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7시까지 등교하고 9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후에 그 길을 걸어야 했던 고등학생은 그저 고달팠다.


가끔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아빠가 학교까지 태워주셨다. 아빠의 차는 힘없고 작은 봉고차였는데 어찌나 힘이 없는지 바람이 불면 휘청했다. 눈이 쌓인 고갯길을 봉고차가 힘들게 오를 때면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음에 올 내리막길 때문이었다.


내리막길의 끝은 큰 도로의 교차로로 이어져 있었다.


봉고차가 눈길에 미끄러지고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 그대로 교차로로 돌진하는 상상을 탈 때마다 했다. 어떤 날은 철없게도 그렇게 되길 바라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아빠를 꽤나 미워했는데 아빠를 미워한 만큼 봉고차도 미웠다. 아빠에게 속한 것 중에 밉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 양가적인 마음을 모른 채 그 작은 차는 올라갈 때 힘을 내고 내려올 때 버티며 무사히 나와 동생을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어제는 남편이 퇴근이 늦었다. 엄마와 둘이 저녁을 먹으며 어떤 이야기 끝에 그 고갯집 얘기가 나왔다.


"엄마 그 집 참 추웠는데 그치?"


엄마는 그 집이 원래 집이 아니라 창고에 보일러를 깔아서 만든 집이라 그렇다고 했다. 원래는 화장실도 없었다며 이사 들어갈 때 만든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 고개 넘어 다닐 때 너무 힘들고 무서웠다고 푸념하듯이 말했다.


엄마는 "내가 밤 열 시에 일 끝내고 장 봐서 들어오는데 팔이 끊어지겠어 안 끊어지겠어"라고 말씀하셨다.


아...


나는 처음으로 그 시절 엄마의 마음을 생각했다.


40대 초반의 엄마, 지금의 나와 같은 연배의 엄마가 밤 열 시까지 식당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모습. 이마트 쓱배송과 새벽 배송을 이용하고, 좋은 가방에 좋은 옷을 입으며, 밥까지 엄마에게 얻어먹으며 일하는 나.


저녁을 먹으며 나는 처음으로 그 고갯길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엄마 고마워. 그렇게 늦게까지 일하고 무겁게 장 봐 와서 나 키워줘서 고마워" 또 처음으로 엄마에게 고백했다.






며칠 전, 책에서 읽은 '아름다움이 결국 우리를 살게 한다'는 구절을 동생에게 보내며 장난스레 말했다.

"정말 맞는 말. 디올, 쇼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살리냐."


동생도 맞장구쳐 주었다.

"맞네, 샤넬도 빼먹지 마."


오늘은 다른 아름다움이 날 살리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딸 은수가 쳐 주는 피아노 소리, 출근길에 맑고 찬 공기, 박수근의 그림, 열광적인 방탄 콘서트, 밑줄을 긋게 하는 문장들, 동생의 존재 자체,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밥.

젊은 여자가 어린 여자를 먹이려고 사온 식료품들, 그 식료품을 들고 온 빨갛게 얼은 손.


마흔이 되어서야 엄마의 아름다운 마음에 고마움과 사랑을 보낸다. 이제야 그 고갯길과 고갯집에게 품었던 미움 슬픔이 털어진다.


아름다움이 결국 우리를 살린다. 내겐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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