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가라앉는다. 정확히는 예민하다. 슬픈 것도 같다. 왜 슬픈지는 모른다. 길바닥에 달라붙은 단풍잎도 싫고,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걷는 것도 짜증 난다. 다시 우울의 시작이다.
지난 일요일엔 시어머니 생신이어서 가족 모임이 있었다. 당연히 외식을 생각하며 시가에 들어서는데 음식 냄새가 났다. 어머니께서 직접 생일상을 준비하신 모양이다.
연어 회, 생굴 무침, 해물 파전, 새로 담근 깍두기, 아욱국에 삼겹살이 차려졌다. 아주버니와 형님이 삼겹살을 굽고 남편과 나는 날름날름 받아먹었다. 재밌게도 삼겹살이 예민함을 눌러줬다.
투 썸 플레이스에서 사 온 샤인머스캣 초콜릿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가족 모두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NC와 KT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봤다. 그렇게 3시간가량 시가에 있다 나오며 우리 가족 참 단란하다 생각했다. 내가 아픈 것만 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펐다. 짜증 나고 슬퍼서 기분이 나쁘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자기도 그렇다며 일요병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생각하며 일요일을 마무리했다.
월요일엔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출근길엔 어깨가 아프더니 퇴근 무렵엔 등과 눈알, 발등까지 아팠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씻고 누웠다. 시계를 보니 7시 반이었다. 밤에 먹는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하는데, 오늘 입은 옷을 정리해야 하는데, 진통제를 먹어야 근육통이 가라앉을 텐데... 정도를 생각하며 잠들었다.
화요일,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6시 반이었다. 어제 저녁에 딸이 갖고 놀던 내 핸드폰은 침대맡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아마도 남편이 가져다 놓은 것 같다. 어제 입고 던져둔 재킷은 스타일러에 돌려져 깨끗한 채로 걸려 있었다.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하니 어머니가 돌리셨을 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관리해 준 옷을 입고, 엄마가 싸준 아침(군고구마)을 챙겨 출근했다.
업무를 보면서 오늘은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약 날짜는 한참 남았지만, 울컥거리며 올라오는 슬픔을 털어놓아야 살 것 같았다.
의사는 평소와 달리 약간의 시간만 내주었다. 예약 없이 갑자기 방문해서 그랬나 싶다. 여전히 슬펐고 마음으로 울었다. 이 무거운 감정을 온전히 보여주면 누구라도 도망갈 것 같았다.
수요일엔 회사 주변에 상담 센터를 검색했다. 어젯밤 잠자리에서 딸이 내 옆을 파고들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이런 마음을 품다니... 끔찍하다.
많은 곳 중에서 회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전에도 회사 근처 상담 센터에서 10회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오백여 개의 문항을 작성해야 했던 건 더럽게 힘들었지만, 상담으로 뭘 얻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과 그런 사람에게 털어놓는 기분은 괜찮았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정신분석센터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숲 속에서 들릴 법한 물소리가 났다. 나무로 된 가구와 의자, 식물들이 벽을 채우고 있었다. 물소리 때문에 숲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상담실엔 누울 수 있는 의자와 푹신한 소파가 있었고, 그 옆에 상담사는 식물처럼 앉아 있었다. 마음속으로 와... 했다. 영화에서 본 장면에 내가 들어와 있네 싶었다.
우리는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대화를 시작했다. 내 주머니 속에는 스타벅스 냅킨이 잔뜩 들어 있었다. 내가 울 거라고 믿었다. 슬프니까. 울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가라앉았다. 남의 얘기를 하듯이 아빠 얘기를 꺼냈다. 왜 아빠 얘기가 먼저 나온 건진 모른다. 선생님은 질문하기보다 기다렸다. 내가 아무 말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두었다. 어색해서 웃음이 나왔다.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뭔가 시작하려나 싶을 때 상담이 끝났다.
The two most important days in your life are the day you are born and the day you find out why
- Mark Twain
내가 왜 태어났는지 알게 되면 이 슬픔이 사라질까?
그 이유를 찾는 게 과제라면 나는 이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겠다.5개의 알약으로 뇌를 다독이며 한 인간에게 마음을 꺼내놓으며 살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