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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Dec 13. 2023

프롤로그: 응, 어서 와 방탄은 처음이지?

방탄소년단 입덕의 이유


2017년 6월, 나는 인간계를 떠나 덕후가 되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삼척에 여행을 온 참이었다. 딸은 먼저 잠들었고 나와 남편은 근처 회센터에서 떠온 우럭을 씹으며 감탄 중이었다. ‘이 집 회 죽이네’.


티브이에선 그즈음 화제성 최고였던 프로듀스 101이 방영되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당부대로 강다니엘에게 투표를 마쳤다. 마지막 회라는데, 누가 1위 일지 굉장히 중요한가 본데, 나에겐 우럭을 입에 넣는 것이 중요했다. 남편의 먹는 속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먹어 대다가 어느 정도 배가 차자 교복을 입은 꽃소년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위 발표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강다니엘을 검색했다. 차고 넘치는 관련 영상 중에 ‘상남자’라는 곡의 커버 영상을 보았고, 원곡자가 방탄소년단임을 알게 되었다. 그날부터 매일 방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몸과 정신이 타 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이 하고 싶은지 몰라서, 해야 하는 일을 했다. ‘실수하면 안 된다’와 ‘남에게 인정받기’가 목표인 듯이 살았던 것도 같다. 그렇게 나를 혹사시키다가 가끔씩 찾아오던 편두통이 극심한 상태가 되었다. 마음에 화가 가득했다. 너무 아팠고 육아휴직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인생 첫 휴식기였다. 아이를 낳고도 승진에 밀릴까 봐 못 쓴 휴직이었다. 쉬는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못 했다는 말이 더 맞으려나. 엄마 노릇, 아내 노릇, 인간 노릇, 아무것도 못 했고, 식물처럼 햇볕만 쐬며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햇볕이 날 살렸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햇볕과 바람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느릿느릿 충전되는 USB 케이블처럼 회복되었고 이듬해 회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회사로 복귀하면서 목표는 하나였다. ‘다시 일해보자. 안되면 말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든 건 방탄소년단의 DNA 가사 같다.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그러니까 2017년 6월의 나는 충전되어 있었다. 내가 좋다면 뭐든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게 덕질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처음엔 그놈의 '나이 값'이 꽤나 나를 짓눌렀다. 나보다 열몇 살 어린 남자들을 좋아해도 되나? 내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 어울리나? 이런 내적 저항을 쳐내는 데에만 반년이 넘게 걸렸다. 그 모든 것은 방탄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방탄의 노래와 가사,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를 설득시켰다.


요즘 나는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덕질한다.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던 나의 감성과 자의식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여전히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를 안다고 생각한 삼십여 년의 시간보다 방탄 덕후로 산  난 몇 년간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안 것 같다.


이제는 방탄을 사랑한다고 쉽게 쓴다. 그들의 음악과 가사사랑한다는 말만 잘하는 게 아니다. 남준이의 뇌기능과 두꺼운 가슴팍, 정국이의 허벅지와 동그라미로 철된 얼굴, 홉이의 희망 바이브와 춤 선, 윤기의 설명 안 되는 까리함과 무기력함, 석진이의 월드 와이드 핸섬과, 세계 1위 미남 태형이 그 자체, 지민이의 사랑스러움과 섹시함 사이를 사랑한다며 내 영혼과 통장을 가져가라는 주접도 잘 떤다.


덕질하는 내가 이상하다. 가장 이상한 게 나라고 생각하니 세상이 이해된다. 언젠가 인간계로 돌아가는 날이 올까. 방탄의 not today 가사처럼 '그때가 오늘은 아니다.' 방탄을 향한 내 마음이 첫날의 우럭회처럼 신선하다.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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