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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Dec 17. 2023

방탄소년단 덕질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당연한 말씀


꿈의 시작 


I know
Every life's a movie
We got different stars and stories
We got different nights and mornings
Our scenarios ain't just boring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재밌어
매일매일 잘 찍고 싶어
WINGS (2016.10.10.) 7번 트랙 'reflection'



초등 고학년의 나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는 게 꿈이었다. 정확히는, 영화 러브 레터의 여자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가 그랬던 것처럼, 학교의 모든 도서 대출 카드에 내 이름을 꾹꾹 눌러 고 싶었다. 이것은 분명 사서 선생님이 책을 많이 빌려가는 나에게 '이러다 여기 있는 책 다 읽겠다'라고 칭찬? 비스름한 말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나는 자신 있었다. 도서관 책들을 다 읽을 자신. 그래서 선생님의 사랑을 받을 자신?



우리 집 옆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어린 내 눈엔 영화 토토로 녹나무처럼 하늘에 닿을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메이와 사카이처럼 아카시아 나무를 향해 고개를 뒤로 젖혀 바라보는 아이였다. 여름이 되면 나무에서 진한 아카시아 향기가 났다. 바람에 두둥실 실려오는 아카시아 향과 나무를 보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길 꿈꿨다. 토토로처럼 마법 팽이를 타고 하늘을 나는, 그런?



난 꿈이 없었지


난 꿈이 없었지
내 가사처럼 맨날 그런 식
내게 답을 주지 못했던 함수와 방정식
그것들은 결국 수많은 해가 되었네
그 빛으로 뒤에 숨은 별을 볼 수 없게 해
그렇게 하루하루 날 죽여가며
뜻도 없이 한우 등급 같은 숫자놀음에 종일을 매달려
난 그저 성공하고 싶었어
남들에게 지겹게 들었던 말이 그것뿐이어서
RM (2015.3.20.) 1번 트랙 '목소리'



스무 살 나는 어른의 삶과는 영원히 상관없을 것처럼 살았다. 내키는 대로 수업에 들어가고 매일 술을 마시면서도 지구 주위를 도는 달처럼 학교 주변을 맴돌았다. 학교 과학도서관 3층 끝까지 들어가 왼쪽으로 꺾으면 학생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 있었다. 소설, 수필이 꽂혀 있는 자리였는데 내 아지트가 되었다. 어떤 날은 종일 캠퍼스를 내려다보고 어떤 날은 닥치는 대로 책을 뽑아 읽었다. 책 속에는 뭐가 되고 싶은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뭔가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야기 속으로 도망쳤다.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았다. '니 꿈은 뭐야?' 시간은 넘치고 흘렀다. 지루하고 지루했다.



이건 진짜야 도박도 게임도 아냐


이건 진짜야 도박도 게임도 아냐
딱 한 번뿐인 인생 넌 대체 누굴 위해 사냐
9살 아니면 10살 때쯤 내 심장은 멈췄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 내 꿈은 뭐였지?
어 진짜 뭐였지
O!RUL8,2? (2013.9.11.) 1번 트랙
'INTRO : O!RUL8,2?'



시간이 흘러넘치는 시기를 지나 시간을 쪼개 쓰는 삶으로 건너왔다. 취직을 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고 주인님이 물 주는 날만 기다리는 식물이 되었다. 나는 얼마나 충성스러운 식물이었나. 시름시름 앓아 고개가 꺾이면서도 해가 뜨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회사로 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사람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급히 달렸다.



내 꿈은 내 목소릴 모두에게 주는 것!!


내 꿈은 나의 목소릴 모두에게 주는 것
내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내 음악과 가사로
RM (2015.3.20.) 1번 트랙 '목소리'



달려간 곳에서 운명처럼 소년단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내 꿈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내 꿈은 내 목소릴 모두에게 주는 것. 내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내 생각과 이야기로.  이야기는 내가 쓰지 않으면 얼마간 존재하다 영원히 사라진다. 비로소 묵묵히 살아온 세월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잊었던 꿈도 기억났다. 나는 죽어가는 식물이 아니다. 모든 도서 대출 카드에 이름을 올려 사랑을 독차지하려야심 찬 동물이었다! 내 목소리 모두에게 건네고 싶다. 닿고 싶다. 어딘가에 있을 내 리스너에게.



Persona
Who the hell am I
I just wanna go I just wanna fly
I just wanna give you all the voices till I die
I just wanna give you all the shoulders when you cry
map of the soul (2019.4.12.) 1번 트랙
'Intro : Persona'



오늘도 야심 차게 하얀 화면 깜빡이는 커서를 따라 내 정체를 써 내려간다. 나는 어느 날 겨우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제라도 찾아얼마나 다행인지. 생기가 몸 밖으로 뿜어져 나다.  기운이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래서 결국 덕질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거야? 당연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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