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천천히 다가왔다. 다리를 붙이고 서면 간격이 있던 오른쪽 허벅지와 왼쪽 허벅지 사이가 어느새 만나고 있었다. 그 접점에선 땀이 났다. 허벅지 사이에서 땀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위쪽 팔뚝과 겨드랑이에도 살이 쪘다. 팔을 쭉 뻗어 흔들면 신나게 덜렁거리는 녀석들이 자꾸만 겨드랑이와 만난다. 그곳에서도 땀이 났다. 살찌면 땀이 많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그 밖에도 브라가 작다, 손목시계 줄이 낀다, 바지 단추가 안 잠긴다 등등의 조짐이 지난 몇 달간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너 살찌고 있어.'
한의사는 상담 전에 인바디 검사부터 하자고 했다. 측정을 하고, 결과지를 훑어보던 의사는 "근육량이 너무 부족하지만, 체중은 55.6 킬로면 정상이네요" 했다. "네? 잠깐만요, 55.6이요?" 이야기를 더 나누고 비싼 한약값을 결제하고 나오는데 몸무게만 맴돌았다. 좀 찐 것은 알았지만 반올림해서 56킬로그램이라니. 몇 달 사이에 7킬로그램이 찐 것이다.
퇴근 후 감자칩을 씹으며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증상을 검색했다. 늘 비슷한 몸무게로 살아온 나는 어디 아픈가를 의심했다. '기운 없음, 지속적으로 피곤한 느낌, 추위에 비정상적으로 민감하며 이런 증상이 점진적으로 발생함, 근육 경련과 강직, 체중 증가(식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부와 모발의 건조증,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 증상.' 애초에 한의원을 찾았던 이유에 해당하는 증상들이 꽤 보였다. 나는 이 병에 걸렸다고 믿었다. 식욕이 좋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다음 날 내과에 찾아가 "선생님 제가 갑상선 기능 저하증인 것 같아요"라고 호소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진 의사는 굳이 원하면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하자고 했다. 결과가 나온 날 의사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과 비타민 D를 처방해 주었다. 다른 것은 정상이었다. 처방전을 받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고개를 떨궜다. 아랫배가 나 여기 있다며 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며칠 동안 찾던(사실은 알고 있던) 이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먹었고, 안 움직였고, 살쪘다.
저녁마다 땀을 내며 걷고, 탄수화물을 미워하며 열흘을 보냈다. 그럴수록 빵이 생각났다. 김연수 작가가 청춘의 문장들에서 쓴 둥글고 부드럽고 누르면 어느 정도 들어가는 빵이 먹고 싶었다. 옅은 갈색이 되도록 바삭하게 구워 땅콩 잼과 딸기 잼을 바른 토스트가 먹고 싶었다. 침대에 누워 '버터가 뭉텅이로 들어간 프레츨은 얼마나 맛있나. 회사 옆 그 집 파니니는 빵에 밴 기름이 예술인데' 같은 생각을 했다. 배달의 민족 앱을 열어 음식 사진을 보기도 했다. 이런 내가 싫어 앱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깔았다. 나는 음식 관리를 포기했다.
의사가 정상 체중이라고 하면 그런 줄 알자. 살쪄도 된다. 더 살찐 남편을 활용하여 작아 보이자. 배달의 민족은 그냥 깔아 두자. 나는 갑자기 너그러운 마음으로 문제를 해치웠다. 그리곤 숭고하게 배달의 민족에 접속해 막창과 계란찜 세트를 주문했다. 설레는 밤이다. 이제 정말 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우리 헤어지자. 잘 가, 44 사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