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약간 떨렸다. 간만에 칼퇴근 했는데 차가 막혀서 20분이나 늦었다. 만나기로 한 식당에 도착해서 둘러보니 머리도 까맣고 옷도 까만 작은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족 단위로 밥 먹는 사람들 틈에서 테이블에 코를 박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여린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하며 앉는데 어색해서 크게 웃었다. 웃고 나니 어색한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만둣국과 냉면을 먹으면서 한참을 얘기했다. 커피숍에 가서 또 한참을 얘기했다. 너무 잘 통했다. 직원이 문 닫을 시간이라고 해서 나왔다. 근처에 있는 그녀의 집까지 십 분쯤을 나란히 걸었다. 가로등이 드문 드문 켜진 밤거리를 이런(?) 사람과 걷는 게 얼마만이지 떠올려 보았다. 나는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잠깐 더 얘기하자고 말했다.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캔커피를 사고 아파트 단지 안 벤치에 앉았다. 담배 펴도 되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했다. 밤 열 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이런 밤에 누군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바라본 적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남편이 남친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뭔가 때문에 남편은 화가 나서 우리 집 앞에 찾아왔었다. 전화를 받고 나가니 멀리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나를 보고 끄는 남편이 보였다. 남편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고, 좀 졸았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뭔가 잘못했었나 보다. 그때는 이렇게 가깝지 않았는데.. 이 사람은 내 가까이에서 담배를 핀 첫 사람이 됐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있었다. 그 시간이 좋아서 안 춥다고 말했지만 추워서 옷 좀 벗어달라고 하고 싶었다. 남자도 남친도 아닌 사람을 두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했다. 누가 보면 우린 어떤 그림이었으려나.
내게 좀 낭만적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