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를 마친 가이드는 삼십 분만 기다리면 다른 버스가 도착할 거라고 말했다. 창밖으로 해가 지면서 숲이 짙어지고 있었다. 이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룩셈부르크 중앙 마을이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구글 맵에서 본 대로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뾰족하게 솟은 건물 사이를 명도가 다른 초록색 솜뭉치 같은 나무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한심하네." 마음의 소리가 조용히 K의 입 밖으로 나왔다. 버스 안은 즐거운 소음으로 가득했다. 이 소란에 영향받은 사람은 K 뿐이었다. 남들이 최고 학점을 찍는다는 제대 후 첫 학기에 학사 경고를 받았다. 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테니 상관없다. K는 바다에 떠 있는 섬을 상상했다.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상상하는 일은 떠나온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버스와 견인 트럭이 도착했다. 가이드는 여전히 들뜬 사람들을 재촉해 내리게 했다. K는 옮겨 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저기, 저는 지금부터 따로 다닐게요. 저 트럭 타고 내려가도 되죠?" 가이드는 K의 얼굴을 잠시 보더니 곧 웃으며 그러라고, 즐거운 여행되라고 말했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버스가 가고, K와 견인 트럭을 몰고 온 남자만 남았다.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졌다. K는 고장 난 버스와 트럭을 연결하는 남자를 지켜봤다. 능숙했다. 할 일을 찾지 못한 K는 트럭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등받이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투어 버스가 파리 북역까지 데려다주는 코스였음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 씨." 투어비 일부라도 환불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남자가 운전석에 타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세요?" "네. 어디서 내려드릴까요?" K는 바로 룩셈부르크 중앙역으로 가서 파리행 기차를 타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하루 묵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산을 타고 내려오니 마을은 어두워져 있었다. 남자가 버스를 정비소에 넘기는 동안 K는 건물 밖에서 어슬렁거렸다. 길 건너에 사진으로 본 아돌프 다리가 보였다. 다리의 조명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무거운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K는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흙바닥에 뒹구는 돌멩이를 발로 살살 굴렸다.
"투어 마저 하셔야죠." 어느새 K 앞에 남자가 서 있었다. "아까 걔보다 제가 잘 할걸요? 가이드." 남자는 외로워본 적 없는 사람이 지을 법한 표정으로 말했다. K는 처음으로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살폈다. "갑시다. 배 안 고파요? 여기 식당 일찍 닫아요." 앞서 가는 남자와 K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아돌프 다리의 조명이 노란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문득 K는 이대로 따라가면 불행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완전히 행복해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