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학원에서 돌아온 첫째는 엄마와 신경전을 펼칩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도 뭔 숙제가 그리 많고, 매일매일의 학원 일정은 또 얼마나 빡빡한지 모릅니다.
"나 때는..." 하고 끼어들다가 급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아이 엄마의 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첫째 아이의 심정도 모르는 것이 아니니, 아빠의 절대 중립은 필수입니다. 물론 둘 앞에만. 각각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이 엄마 편, 첫째 아이 편이 됩니다. 박쥐 같은 삶을 사는 남편이라...
와, 진짜 쩐다. 뭐가? 공부 안 했는데 90점 받았어. 쩐다. 반장은 올백이래. 오, 쩔어. 넌? 나? 52점. 집에 가면 쩔겠네? 아니. 안 혼나? 쩐다. 우리 집 완전 쩔어. 52점 맞아도 막 웃어. -'쩔어', '팝콘교실(문현식, 2015)' 중-
정말이지 52점 맞아도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생인데 지금 90점이나, 52점이나 뭐가 더 중요한가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나이 먹고, 철이 들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나아질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간사한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봅니다. 마치 지금 못하면 영원히 못할 것 같고,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할 것 같은 이 불안감. 옆집 누구는 이걸 다 했고, 앞집 누구는 벌써 다른 것을 하고 있다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경쟁 또 경쟁.
특히나 경쟁이 심한 대한민국의 지금을 사는 소심한 부모의 귀에는 경쟁이라는 말이 항상 들려옵니다. 학교에 가도, 식당에 가도, 서점에 가도 오직 경쟁입니다. 내가 내 맘대로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오늘도 아이들을 몰아세웁니다.
문득 이게 뭔가 싶어 집니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이 방법밖에는 없나? 오늘도 역부족을 느끼며 아빠의 하루, 엄마의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다 문득 용기를 내고 싶어 집니다. 다 그만두고 숨이라도 크게 쉬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