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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Jun 21. 2020

언어와 편견

혐오 언어보다 욕설이 낫다.

    

    서울특별시에 잠시 살았을 때 고향인 대전에 다녀오면 서울 사람들은 으레 “시골에 잘 다녀왔냐”라고 말했다. 처음엔 의아했다. 대전은 광역시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도시 가운데 하나인데, 그들에겐 시골이라니. 하지만 자꾸 듣다보니 적응이 됐다. 서울 이외의 전국이 시골이고 지방이라는 규정에 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지방(地方)이란 단어의 두 번째 뜻이 ‘서울 이외의 지역’으로 나온다. (첫 번째 뜻은 ‘어느 방면의 땅’이다.) 지방은 서울을 내포하는 다른 표현인 중앙이란 말과 상하 관계처럼 쓰이기도 한다. 지방으로 인사발령 받는 것을 좌천이라고 부르는 조직이 많다. 언제부턴가 서울은 흥하고 지방은 쇠함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러한 언어가 한 몫을 했을 것이다.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크레인을 예인하던 삼성중공업 선단이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해 막대한 양의 원유가 유출됐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이 사고는 ‘태안기름유출사고’로 불린다. 이는 언론이 만들어낸 용어로 피해자인 태안지역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웠다.(기자 시절 그 가해자의 일원이었기에 반성한다.)

    일각에서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이 포함된 사고 명칭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엄청난 환경오염사고의 오명에서 태안과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연상이 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삼성은 희미해졌다. 참고로, 이 사고의 법률상의 명칭은 ‘예인선 삼성T-5호, 예인선 삼호T-3호의 피예인부선 삼성1호와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충돌로 인한 해양오염사건이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각하고, 그 생각이 모여 현실을 구성한다. 이는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언어는 그 사회의 집이다. 편견이 담긴 말을 많은 사람들이 쓰면 그 편견이 사회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중앙과 지방이란 말이 통용되는 나라는 대체로 지역 격차가 크다. 중앙을 선망하고 지방을 벗어나려는 욕망이 꿈틀대는 사회다. 그러나 균형발전은 서울(중앙)이라는 하나의 극점에 집중되어선 이뤄질 수 없다. 건강한 국가들은 다양한 지역거점이 활성화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역분권을 강조하고 있으니 어떤 성과를 낼지 두고 봐야겠다.



    입시 관련 커뮤니티에는 수험생들이 쏟아내는 거친 말들로 와글와글하지만, 그 중에서 정말 유감스러운 말은 ‘지잡대’다. 지역의 대학들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고 이런 혐오스러운 언어로 지칭하다니 가슴 아픈 일이다. 혐오 언어는 편견의 집을 짓고, 그곳에 사람들을 가둔다. 지잡대라는 말을 쓰면서 ‘인서울’의 욕망은 더욱 커졌다. 전국의 중고생들은 ‘지잡대’라는 말이 싫어서라도 지방 탈출에 안간힘을 쓴다. 이는 전통적인 지역명문대학들의 평판이 추락하도록 부추기는 사회적 병리 또는 역진을 일으켰다. 지역 쇠락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말할 것도 없이 지역 학생들에겐 큰 상처가 됐다. 서울에 소재하고 있으면 그걸로 좋은 대학이 돼버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욕설이 오히려 낫다. 욕은 순간의 감정을 배설하고 끝이다. 그러나 혐오 언어는 더 독한 상처를 남기며, 사회를 뒤틀리게 왜곡한다. 지잡대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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