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국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헌법 제1조이다. 즉,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란 정치체제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세계 역사 흐름에 따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 아냐?
역사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아주 큰 착각 중의 하나이다. 나도 역사를 접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민주주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한반도 역사 3000년중,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었던 기간은 오늘까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세계 민주주의는 그동안 이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희생을 통해 성장했고, 또한 처절하게 지켜졌다.
특히 대한민국에선 더욱 그랬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숱한 어려움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대통령 이승만의 장기 독재 욕심으로 인한 ‘부정선거’가 있었다. 제4대 대선 당시, 5인 1조 감시 투표가 이뤄졌고, 투표장 전등을 끄고 집계 현황이 조작되는 촌극도 일어났다. 어떤 지역구에서는 야당 후보 1표, 이승만의 자유당 후보에는 수만 표가 나오기도 했으며, 내무부 장관도 양심에 가책을 느꼈는지, 92%의 득표율을 84%로 ‘자체 수정’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대한민국의 주인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 부정선거에 항거하다가 얼굴에 최루탄이 박혀 숨진 채 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를 다룬 부산일보 기사
▲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민들
하지만 역시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었다. 민주화 투사들을 비롯한 여러 국민의 목숨 건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정부를 ‘잠시’ 세웠다.
▲ 4.19혁명으로 탄생한 장면(오른쪽) 내각과 윤보선 제4대 대통령(왼쪽)
하지만, 이는 1년 만에 군인 박정희 장군의 5.16 쿠데타로 뒤집혔다. 국민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 정치에 맞서 힘들게 쟁취한 민주 정부가 군인들에 의해 1년 만에 막을 내렸던 것이다. 이후 국가 경제 성장과 민주화 탄압이라는 양극단의 정치가 계속되며, 군부독재 정권은 1987년 전두환 정부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무려 30년간의 군부 독재기를 겪었다.
▲ 27년의 군부 정권을 이어갔던 박정희, 전두환(1961 ~ 1987)
군부 독재기의 명과 암은 극명했다. 군부독재는 분명 효율적이었다. 군대가 장악한 정부답게, 명확한 상명하복 체제가 전 국민에게 퍼졌다. 전 국민의 일사불란한 관료화로 인해 우리의 경제는 일관된 길로 단기간에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보다는, 국가 주도 경제를 고수했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국가가 경제를 철저히 통제했다. 쌀값을 국가가 정하고, 특정 기업과 유착관계도 맺으며, 부채 탕감과 같은 특혜를 주기도 했다. 그 기간, 굶주림에 허덕이던 우리나라 경제는 분명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한반도 역사가 쓰인 이래, 처음으로 절대 빈곤이 없어졌다. 세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가 엄청난 속도로 커졌다.
▲ 장면 정부가 수립했던 ‘경제개발 5개년 정책’을 실행에 옮긴 박정희 전 대통령 (1962 ~ 1966)
하지만 국가 경제 성장이란 빛 뒤에는 그림자도 존재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같은 기간, 크게 탄압받았다.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무엇보다 이익에 대한 분배가 ‘공정’하지 못했다. 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못했다. 절대빈곤에서는 벗어났지만, 상대적 빈곤이 심해졌다. 국민 대다수로 구성되어있던 노동자 계층은 보호받지 못했다.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법이 이를 뒷 바쳐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엄혹했던 시기에도, 시민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힘쓰는 민주주의 투사들이 있었다.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던 약자들은 ‘인권’을 부르짖으며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또한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와 중소 상공인들은 소수 기업가의 부의 독점을 경계했고, 이들이 추대했던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들을 법으로 제정하기 시작했다.
그 힘겨운 과정의 끝으로, 우리 국민은 1987년, 드디어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했다.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뽑는 건, 사실 1987년 이후에 태어난 친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수많은 시민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 끝의 열매였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희생이 있었고, 김대중·김근태·권인숙 등의 민주주의자들이 군부의 잔혹한 고문을 버텨낸 결과였다.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은 1987년 이후, 국가의 중대사를 대리해 처리하는 정치인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군부 독재기를 끝낸 '6월 항쟁'을 다룬 영화『1987』포스터
1987년 '6월 항쟁'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오늘날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 이뤄냈다고 생각했지만, 민주주의의 길은 아직도 멀었고, 그 길은 지금도 험난하다. 시민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의 부정부패가 사실로 드러난 순간, 한겨울 추위 속에서 2달 간의 집회로 탄핵까지 몰고 간 게 우리의 불과 3년 전 현대사다. 하지만 물론, 이에 반대하는 국민도 있었다. 그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촛불을 든 사람들에 맞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렇게 매 주말,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고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우는 집회가 가능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 체제이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이었으면, 과거처럼 이들 모두 경찰에 잡혀 들어가, 끔찍한 고문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이처럼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국가에 가까이 왔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또한 절대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