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역사 #10. 금의 몰락, 그리고 은의 전성시대
은이 금보다 귀했던 역사
은의 시대(15~18c)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정치체제에 대한 아주 간단한 이해가 필요하다^^. 당시 유럽 각국의 영토는 우리 동양과는 개념이 좀 달랐다. 같은 1,500년대 시기였던 동양 역사(eg. 명나라, 조선)에서의 영토 개념은 어땠을까?
국토는 왕의 소유가 아니었다. 국토는 하늘이 내려주고, 왕은 하늘이 내려준 땅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중간 매개체였을 뿐이었다. 쉽게 말해, 서양과 달리 왕이 국토를 개인 영유지처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왕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세금을 걷어 나라를 다스릴 뿐이었지, 영토가 개인 소유는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 사회는 당시만 해도, 귀족이 다스리는 땅의 주인은 귀족이고, 거기서 살고있는 백성들도 결국 귀족의 소유였다. 그리고 땅과 백성은 귀족에게 그대로 세습되었다. 따라서 왕실끼리 결혼을 하면, 각기 나뉘어있던 영토가 갑자기 합쳐지기도 하고, 그 자손에서 형제가 여럿 나오면 세습되면서 갑자기 분리되기도 했다.
그러한 결혼 사업을 가장 성공적으로 진행했던 자가 바로 카를 5세였다.
스페인이 잘나간다던 16세기 당시의 왕이다. 그는 스페인, 이탈리아 남부,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의 대다수 영토를 왕실간의 혼인사업을 통해서 넓혀가고 있었다.
서유럽의 대륙의 반을 다스리던 권력자, 카를 5세는 부자였을까?
아니다! 무려 4번이나 파산했다.
그 이유는 화폐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 금은 오늘날의 화폐에 불과했다. 그런데 왕과 귀족은 아메리카 정복자들이 가져온 엄청난 양의 금을 사치에만 이용했지, 이를 통한 산업발전은 등한시했다.
따라서 스페인에는 그동안 희소성이 있던 금이 갑자기 남아도는 사태가 일어났다. 금만 넘쳐났고, 국민 총생산은 전과 같았다. 경제 규모는 그대론데, 금(화폐)에 대한 희소성만 사라진 것이다. 대규모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스페인의 경제는 수차례 물가 인상이 일어나, 도리어 경제가 파탄 났다. 스페인이 대항해시대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유럽의 변방에서 허덕이는 한 이유기도 하다.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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