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간 화폐의 역사, 부르카는 이슬람교의 산물이 아니야!
#2 인간 화폐의 역사, 그
5천 년 전, 현 이라크에서 인간 사회 첫 문명이 탄생했다. 바로 B.C 2,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여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피라미드 사회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힘없는 백성에게,
유프라테스 강의 신에게 곡물을 바치지 않으면, 하늘의 신이 노하여 비를 내리지 않아 모두가 굶어 죽게 될 것이다.
라며 공포를 파는 종교·정치 권력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신전'을 지어, 여기에서 곡식을 받아 운영하며 살아갔다. 백성들은 생각보다 쉽게, 그들이 뿌린 공포에 넘어갔다. 그렇게 신전에 곡식은 쌓여갔다. 결국 신전을 운영하는 자들은 불로소득 이자를 통해 기득권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문명이 발생하며, 기득권 층은 그렇게 지구라트라는 신전을 만든 것이다. 이 신전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대가로 농민들에게 곡식을 받아 이자 놀음을 했다. 이것이 역사가 쓰인 이후, 최초의 고리대금업이었다.
하지만, 이 신전을 통한 고리대금업으로 인해, 사회는 혼란해졌다. 바빌론의 백성들은 가진 자들의 꾀에 빠져 빚을 갚지 못했다. 그중 특히 일반 농민 백성에게 가장 무서웠던 것은 무엇일까?
이는 바로, 계속되는 흉년이었다.
흉년은 사회 문제라기보다는, 천재지변 아닌가요?
모든 사회 문제는, 결국 자연현상부터 시작한다. 흉년이 들면 신전에서 곡식을 빌릴 수 있지만, 그 다음 해에도 흉년이 들면, 이를 갚지 못해 파산하는 서민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 문제가 쌓이면 민심이 흉흉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선의 왕은 매년 기우제를 지내고, 자신이 직접 궁궐터에 농사를 지어 신농업기술을 연구했던 것이다.
그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파산한 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몸으로 때우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남성은 노역 현장의 노예로 끌려가고, 여성은 윤락가로 팔려갔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의 후예인 아시리아(현 시리아) 길거리에는 파산당한 윤락 여성들이 즐비했고, 이에 대한 성추행과 '여성들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여성 혐오 문제가 당시에도 엄청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당시 몰락한 여성 노예에겐 남성 노예보다 높은 화폐가치가 붙었다. 노동력이 중심인 농경 사회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가 크면 또 다른 노동력이 된다. 기계가 발명되어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기 전까지, 인간의 노동력은 곧 국력이었다. 따라서 가계가 파산하면, 신전에 딸을 가장 먼저 팔아넘겨야 했다. 그리고 이 딸은 다시 윤락가로 팔려갔다.
그런데, 이것은 가진 것 없는 여성들만의 문제였을까? 아니다. 부잣집 딸들도 성추행을 당하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가진 집 딸들과 윤락여성들을 구별하기 위해 탄생한 도구가 부르카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부르카의 탄생 배경이다.
가진 집 부녀자들은 길을 다닐 때 부르카를 쓰도록 법이 제정되었다. 만약 노예 여성이 이를 어기고 부르카를 쓸 경우, 귀가 잘리는 형벌이 내려졌다. 오늘날 여성 인권탄압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부르카가, 고대 시기에는 기득권층만 쓸 수 있던 의복이었던 것이다.
또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오류가 하나 있다. 부르카가 이슬람교에서 만들어졌다는 오해인데, 부르카는 이슬람교가 탄생하기(642) 훨씬 전에 생긴 제도다. 다만 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이 현재 이슬람 문명권에 속해있고, 이들 문화권에 아직 남아있는 문화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지 오류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윤락 여성과 일반인을 구별하기 위해 순결을 강요하는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순결한 여성과 순결하지 않은 여성을 구별하는 수단이 부르카였던 것이다. 여성의 화폐가치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가문의 딸을 시집보내거나 신전에 파는 주체도 결국 가장이었다. 이렇게 가부장제 또한 인류 최초의 문명에서 서서히 강화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아시리아 노예로 전락하는 순간, 누구에게든 비참한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이런 끔찍한 노예로 좌천당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군대가 아시리아의 군대를 막으려고 목숨을 바친 것을 보면, 이들이 “노예로 전락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전사들의 결의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흉년과 높은 이자로 농민들이 파산해 노예가 되던 역사는, 사실 지금도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이는 마치, 계속되는 불경기에 금융권에 대출을 끼고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줄도산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에 따라 가정이 깨지고, 생계가 끊긴 여성들이 안타까운 현장에 내몰리게 되기도 한다. 일부 몰지각한 자들은 역사 속에서 계속되어왔던 사회 문제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이를 통해 여성 혐오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 같은 사회 문제는,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4천 년 간 반복되던 역사다.
이러한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역사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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