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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역사 Feb 21. 2020

국가 간 경제 복속, 그 반복된 역사

#4 화폐 유통의 시초는 군대였다.



기원전 100년 경, 인간 화폐 시대를 살던 로마의 노예들이 이를 참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로마의 인간 화폐였던 로마 노예들의 '스파르타쿠스 난'을 배경으로 한 미드



유럽은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체제가 완성되어가던 시기다.


로마 제국(분홍)과 중국 한나라(노랑)의 전성기 시절 영토 (0세기)




로마는 당시 서양의 중심을 잡고 있던 국가로서, 인구가 50만이 넘는 대제국이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통제가 어려운 법... 이렇게 큰 나라의 변방에서는 반란 또한 자주 일어났었다. 그래서 이를 진압할 강력한 군대가 필요했다.




그런데 당시 로마의 군대는, 단순히 노예 반란을 진압하는 목적으로만 존재했을까? 아니다. 그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바로, 정복 전쟁이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옆 나라를 쳐들어가 금은보화를 빼앗은 것이었다.



로마 카이사르의 전승 행렬(실상은 정복 전쟁으로 인한 금은보화 약탈 행렬)



그렇게 빼앗은 금은동으로, 자국의 동전을 대량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단순한 약탈이 아니었다. 바로 정복지를 경제적으로 복속시키기 위한 일환이었다.




쳐들어가 영토 확장을 한 것까진 이해가 되는데, 왜 금은보화를 자국의 동전으로 만들어 뿌린 걸까?





(로마로 예를 들어보자면)

① 정복지 민중들에게 로마의 동전으로 세금을 바치게 하면, 피정복민들은 로마 동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


② 그리고 로마 정부는 정복지 군인들에게 봉급으로 동전을 준다.


③ 정복지 군인들은 이 동전을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피정복민들에게 주고, 그들에게 군수품을 받는다.



그렇게 식민지 화폐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었던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어 왔다.



로마에 300년 앞섰던 알렉산더 제국도 대륙을 평정할 때 위 방식을 활용했었다.


BC.4세기,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동서양을 모두 정복한 알렉산더 3세


BC.4세기 당시, 알렉산더 제국이 정복지에 뿌렸던 은화






이 같은 역사는 불과 100년 전에도 반복되었다. 


일본 제국도 한일병합 1년 전(1909)부터 조선의 화폐를 일본 화폐로 통합시키는 '화폐정리사업'을 단행했었다. 

    

구한말 화폐 백동화(우측)와 대한제국으로 파견됐던 재정 고문 메가다(우측)


일제에 나라가 병합되기 1년 전, 일본에서 메가다라는 인물이 조선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임명되어 왔다. 그는 조선의 화폐를 하루아침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화폐정리사업'을 단행했다. 메가다가 정한 조선 동전의 교환기간은 고작 3일뿐이었고, 그마저도 행정이 지체되어 많은 조선 상인, 민족 자본가, 민족 은행이 몰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일본은 본국 자본이 식민지 조선에 침투할 모든 준비를 끝냈다.


이렇게 한 나라의 경제를 복속시키면, 민중들은 식민 체제에 그대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






화폐의 원료는 금·은·동 뿐만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다이아몬드처럼, 희소성이 있는 물품은 화폐로서 기능할 자격이 됐다.


소금(Salt) 또한 그러했다.


소금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생존 필수품이다. 고대 시대 당시는 염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터라, 당시 소금은 오늘의 골드바처럼 매우 귀했다. 그래서 국가는 이를 화폐로서 이용했으며, 국민 통제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소금을 안 먹으면 인간이 살 수가 없는 것을 이용한 통치였다.


오늘날 담배 생산을 KT&G에서만 관장하듯, 국가가 소금을 독점 생산, 판매하기도 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려의 충선왕이 이 소금 전매제 정책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화폐의 역할을 수행했던 소금은 결과적으로 봉급(Salary)의 역할까지 도맡았다. 그래서 영어 Salary의 어원이 Salt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월급이 짠 이유...




고대 유럽에서는 소금이 귀했기 때문에, 소금 광산에 대한 도시 국가 간의 사투가 치열했다.




프랑스 남부의 소금 광산 도시, Aigues-mortes




이처럼 정복 군인들이 화폐를 유통시키는 시스템, 즉 '군사화폐 제도'는 피정복민 다수를 노예로 전락시키지는 않았다.




'군사화폐제도'는 위처럼 '노예화폐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주기도 했지만, 단점 또한 극명했다.




결정적으로 식민지 경제 체제에서의 고리대금업으로 인한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또한 군대에서 봉급으로 주던 돈이 시장에 갑자기 풀리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문제, 그리고 정복자들의 지속적인 영토 확장으로 인한 민중의 고통이 계속되었다.



     

로마제국과 사비니의 비극적 전쟁을 표현한 그림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이러한 로마의 경제·사회 문제들이 심각해지던 찰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하늘의 뜻이었을까?

예수님과 무함마드께서
인간을 탐욕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내려오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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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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