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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남을 동정하지 않기

그는 내가 갖지 못한 긍정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by 모두미

결혼한 지 5년 만에 인도에 와서 대학을 다녔다. 아주 간단한 대화만 가능했던 나에게 아이 둘이 있는 엄마로, 한 남편의 아내로 대학을 다닌 다는 것은 아주 큰 도전이었다.

처음엔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강의가 이해가 되지 않아 과제물이 무엇인지 헤매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 생활을 시작할 때 쯤 그 학생을 만났다. 그는 좀 특이했다.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수업을 마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수업 시작 전 먼저 와서 수업을 준비하고 맨 나중으로 나가던 그 학생은 강의 시간이면 아주 활발히 교수님의 수업에 참석했다. 때론 엉뚱한 질문들을 해서 교수님을 당황하게하기도 했지만 그의 열정을 알기에 교수님도 그런 그의 행동이 싫지만은 않은 듯 했다.

난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는 그 학생이 궁금해 졌다.

“저 학생은 참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옆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 했다.

“아. 저 학생은 시각장애인이야. 일반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학교를 다녀서 이 학교에서는 아주 유명해.”

“정말? 난 몰랐었는데. 대단한 친구구나.”

친구와의 대화에서 알게 된 그 학생의 몰랐던 진실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얼마나 힘들까? 앞을 보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으니. 강의를 들을 때도 쉽지 않을 텐데......’

그 날 이후로 강의 시간이면 난 그 학생을 더 자주 봤다.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모습 그리고 혼자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모습.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학기가 끝날 때 쯤 남편과 함께 교정을 거닐었다. 뜨거운 인도의 열기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야자수 나무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들, 그리고 간간히 불어오는 후덥지근한 바람까지. 우리는 인도 그대로의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교정 한 가운데에 그 학생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의 손에는 검은색 한 보따리의 짐이 있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 걸까?

같은 강의를 들었지만 그는 나를 본적이 없고 나 또한 그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남편은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평범한 대화들이 오고갈 때 쯤 그 학생이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제가 멋진 넥타이를 가지고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그래요. 한번 보여 주세요.” 남편은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어디 박스 안에서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은 빨간색 넥타이였다. 아니 붉은 빛 나는 고동나무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 것 같다. 그 넥타이 안에는 교회 그림이 엷게 찍혀 있었다.

“어디서든지 사용하시기 좋을 거예요. 교회가실 때 사용하면 더 좋고요.”

그의 말을 듣던 남편은 꼭 필요한 것이라며 돈을 주고 그 넥타이를 샀다. 평생을 가도 한 번도 매지 않을 것 같은 그 촌스러운 색깔의 넥타이를 사면서도 남편은 아주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저 학생 나랑 같이 강의 듣는 친구예요.”

“그래? 앞이 안 보이는 것 같던데.”

“네. 그래도 강의실에서는 가장 우수학생이에요. 열심히 공부하더라고요.”

“그렇구나. 아까 잠깐 이야기 하는데 이런 넥타이를 팔아서 학비를 모은다더라고. 그래서 좀 비싼 느낌은 있었지만 넥타이를 샀어요. 그런데 저 학생 참 멋지게 사는 것 같아. 넥타이를 파는데도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데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하더라고. 난 저 학생의 당당함이 왠지 부러워.”

그러고 보면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주눅 든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비록 그의 옷차림새나 말투가 조금 촌스러워도 그는 매 순간 자신감 있게 지내고 있었다. 사실 그를 볼 때 마다 난 눈을 보지 못한다는 하나의 결점을 가지고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의 삶을 동정했었다.

그날 그 학생을 보면서 내 생각이 내 단순한 동정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다 보면서도 용기내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나.

비록 세상을 보지는 못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는 그 청년.

어쩌면 나 보다도 더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대학 안에서 넥타이를 파는 것이 될 지라도 자신의 삶에 떳떳하고 어려움을 직접 부딪치면서 이겨 나가는 그 친구.

그의 삶에 감히 동정이라는 단어로 그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어느새 그는 종종 걸음이 강의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의 뒷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을 텐데 그날은 왠지 그의 뒷모습이 경기에서 승리한 승리자의 모습처럼 멋져 보였다.

한손에는 검은 봉지를 들고 한 손은 나무 막대기 하나 의지해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

어쩌면 그는 내가 삶에서 놓치고 보지 못 한 가장 중요한 것을 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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