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미 Jul 04. 2017

비오는 날의 댄스파티

자유롭게 비를 즐길 수 있는 나이?

이곳의 비는 한국의 비와는 좀 다르다.

일 년에 몇 달 만 몰아서 내린다. 그러다 보니 우기가 되면 갑자기 그것도 아주 거센 빗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지곤 한다.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도 마당을 물바다로 만들 정도로 인도의 비는 능력자다.      


한국에서 봉사대가 왔다. 매 년 한 번 씩 무료 진료를 진행하는 주간이다.

종교에 상관없이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인 대학생들. 오랜만에 들리는 한국말 소리도 평소에 보던 사람들의 피부보다도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한국 학생들을 보는 기쁨은 외국에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잔디위로 빗물이 차기시작했다

후두두두두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굵은 빗줄기였다.

집안 정리를 하고 있던 나는 비를 보자마자 바깥으로 달려갔다.

창문! 우리 집의 오래 된 자동차 창문이 모두 열려 있었던 것이다. 똥차라는 별명을 가진 우리집 차는 인도 이곳 저곳을 많이 다녀서 많이 낡았다. 그 덕분에 문도 잘 안닫히고 창문도 잘 안 닫힌다.

폭우 속을 헤쳐가 금방 창문을 닫고 오겠다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무리 올려도 올라가지 않는 이 사랑스러운 똥차.

"아니 그 사람은 왜 이 창문을 안 닫고 가서 이렇게 날 고생시키는거야?"

쏟아 붇는 폭우 속에서 혼자 그 창문을 올리기란 불가능했다.

"성민아. 성민아 빨리 와봐."

숙제를 하다 말고 나온 큰아이는 빗속에서 자기를 부르는 엄마를 보자 마자 로또에 당첨된 것 처럼 소리를 지르며 나왔다.

"엄마. 이런건 내가 잘한다니까요."

나는 버튼을 올리고 성민이는 창문을 당기며 노력을 했지만 마지막 운전사 쪽 창문이 닫히지 않았다.

"아니. 너네 아빠는 도대체 왜 창문도 안닫냐."

"엄마. 히히히 재밌잖아요. 와 엄마도 다 젖었네."

그러고 보니 성민이도 나도 그 짧은 시간에 온 몸이 다 젖어 있었다.

성민이의 아이디어로 우산을 창문에 끼워 놓고 나서야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가끔 아이들의 아이디어는 나를 놀라게한다

여전히 내리는 비. 온 몸이 다 젖기까지 비를 맞아 본 적이 얼마만인건지.

물론 창문을 올려 놓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긴 했지만 왠지 흠뻑 젖은 몸이 그리 싫지 많은 않았다.     

그때 어린이 프로그램을 끝내고 돌아오는 대학생들이 보였다. 뚝뚝이(오토바이를 개조한 오픈식 택시)에서 내린 학생들은 앞에 널어 놓았던 빨래를 걷는가 싶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뚝뚝이를 타고 돌아오는 봉사대원들
아.... 젊음이 이래서 아름다운걸까

그 학생들에게 억수같이 내리는 이 비는 다 말라가는 옷을 적셔 버린 짖꿎은 소낙비가 아니었다.

 온 몸을 흠뻑 적셔 주고 친구들과 인도의 비를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고마운 비였을지 모른다.

두 세명이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열 명이 넘는 친구들이 모여서 춤을 추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소낙비에도 학생들은 짖꿎게 서로를 넘어트려 가며 같이 온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에게도 빗물을 퍼부어 가며 비 축제를 이어가고 있었다.     

맘 같아선 나도 함께 뛰어가 학생들과 물장난을 치고 싶었다. 어쩌면 이미 내 마음은 그 친구들과 함께 빗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를 흠뻑 맞으며 사랑을 느끼고, 아픔을 느끼고, 열정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는지...

언제 부턴가 난 비가 올 때는 무조건 우산을 써야 했고 눈이 올 때는 아이들의 눈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언제 부턴가 나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을 다 포장해 버렸는지 모른다.

비를 흠뻑 맞으며 그저 비를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커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낭만 적인 모습은 대학생 때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라고, 이제는 어른이니까 체면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자동차 창문 때문에 온 몸에 비를 맞은 그날.

난 여전히 그 자유를, 그 일탈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른이라는 포장지는 가끔은 벗어 던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날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소낙비가 줄어들 때 쯤 비를 맞으며 춤을 추던 학생들도, 학생들에게 물벼락을 맞은 교수님들도, 그리고 멀리서 비를 맞으며 그들을 쳐다 보고 있던 나도 짧게 주어졌던 그 시간들을 아쉬워 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인도에서 가진 특별한 소낙비 축제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릭샤 아저씨의 반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