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지 않고 살고 싶었다.
어렸을 적 나는 코가 작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고래입이라고 놀림도 많이 받았다.
아무 표정 없는 내 모습은 화난 얼굴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춘기가 시작 될 무렵 나는 빨래 집개를 코에 꽂고 잠을 청하기도 했고 입 꼬리를 올리기 위해 친구들과 거울을 보며 ‘와이키키 위스키’라며 주문 아닌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어떠한 사진을 찍어도 웃음을 보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찍은 내 주민등록증 사진 속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웃으면 입 꼬리가 적어도 평행선이 되었고 웃는 얼굴 속 내 코는 그리 낮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더 많이 웃었다. 사람들은 잘 웃는 나를 착한 아이라 불렀다.
물론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나는 맏딸이었고 착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에게도 동생에게도 피해주지 않는 그런 딸이 되고 싶었다. 또 O형의 성향에 맞춘 것처럼 난 똑 부러지지는 못하나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아주 털털하며 성격 좋은 사람으로 불렸다.
그리고 양반의 고장 안동에서 태어나 자라났던 나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마음만은, 양반의 피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 주장을 말하기 보다는 다른 이의 주장을 이해해주는 편이 더 많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욕 안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착하게 살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다투면 그 불편한 감정을 오래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이면 친구를 찾아가 화해를 청했다. 때론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지만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고 친구들의 화를 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착한 사람으로만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다보니 큰 벽돌처럼 서 있는 오해 앞에 차근차근 나의 잘못이 아님을 설명하지 못할 때도 많이 있음을 깨달았다.
어느 전문가의 말처럼 살면서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고 지지해 준다면 어떤 부류는 나에게 관심이 없을 테고 또 어떤 부류는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미워하는 마음 싫은 마음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일일이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랬다. 언제 부턴가 삶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따가운 가시처럼 아픈 말들도, 무심코 던져진 돌멩이처럼 나에게 상처 주는 말들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어쩌면 나는 상처받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그렇게 더 잘 하려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상처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삶이라면. 가끔 불편하게 떨어지는 돌멩이들도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떨어지는 따가운 가시들 마저도 내 삶의 한 부분이라면.
난 오늘부터 무덤덤하게 내게 날아오는 시선들을 무시해 보려고 한다. 때로는 변론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때론 마음 앓이하며 그 순간을 지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내 삶의 희로애락 중 하나라 여기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잘 견디고 있는 내게 말할 것이다.
“모두가 다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때론 오해 받아도 괜찮아. 그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니까. 그리고 이것도 네 삶의 한 부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