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써지지 않는 기근이 우리를 덮칠 때
요즘 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하고 아이들 학교를 보낸다. 그리고 오피스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영수증을 정리하다 오후가 되면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러다 보면 학교 마치고 온 두 꼬맹이 녀석이 나를 기다린다.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간다. 어떨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시간에 따라 생활에 따라 달려가는 듯하다.
어제는 남편에게 오늘 오후 시간은 나만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오랜만의 휴가 신청이었기에 남편도 흔쾌히 허락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피아노 교실이다. 요즘 시험기간이어서 아이들이 오지 않기 때문에 피아노 교실은 아주 한가하다. 나무로 만든 키보드 보관함 위에 컴퓨터를 올려놓고 바로 옆에 있는 인도식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지나가는 기차 소리만 들리고 보이는 것이라곤 무성한 풀들 밖에 없는 풍경은 오히려 내 마음에 평온을 주었다. 천장에 붙어 있는 큰 선풍기 바람과 함께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나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나가지 않았던 고민,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다시 떠올렸다.
글을 쓰고 싶으나 써지지 않는 나의 상태. 내 안에 감수성이라고는 다 말라 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잠재성을 담은 작은 유리병을 누가 홀라당 훔쳐가 버린 것만 같았다. 글을 쓰고 싶었으나 써지지 않았던 지난 시간들.
어쩌면 주기적으로 오는 슬럼프와도 같은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들.
쓰지 못하면 채우기라도 하자며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다른 글을 쓸 수 없으니 책을 읽은 감상문이라도 쓰자며 독서 감상문을 쓰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작가는 글만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떠한 글이라도 매일 같이 앉아서 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조용한 피아노 교실에 앉은 것이었다.
모두가 식사를 하러간 오늘도 나는 사과 하나를 들고 다시 피아노 교실에 앉았다.
그리고 무작정 글을 써 내려간다. 그제야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존재 했던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어떠한 글이라도 써야 했었다.
때로는 행복한 글, 때로는 힘든 글, 때로는 이해가지 않는 글이어도 써야 작가인 것이다.
“정말 쓸 수 없는 경우는 기근이 들었을 때이다. 갑자기 평생토록 자신에게 흥미로운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느낌은 지나갈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그저 일기장을 꺼내어 두세 페이지 푸념을 늘어놓아라.” -‘작가의 시작’ 중에서
“엉덩이로 쓰는 글-
그것은 영감 자체를 아주 조용하게 다룸으로써 글쓰기의 드라마에서, 그 특별함에서 바람을 빼버린다. 드라마 따윈 없다. 우리는 그저 앉아 있어야 한다. 소재가 떠오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냥 그렇게 앉아 있다.” -‘작가의 시작’ 중에서
나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고 다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