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웃는 모습이 좋다.
비닛은 우리가 돕는 아이들 중 가장 가난한 아이였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다리가 많이 아팠다. 그리고 누나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매일 세끼를 먹을 수도 없는 그런 가난한 가족이었다. 또래 아이들보다도 훨씬 작은 비닛은 10살이었지만 유치원생으로 학교에 입학했다. 모든 것이 낯선 비닛에게 수업시간은 또 다른 두려움의 장소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영어로 말하는 선생님과 친구들 그 사이에서 비닛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 뿐이었다.
화를 내고 울고 수업에도 집중을 잘 하지 못했다.
입학 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비닛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수업이 마치자마자 무작정 교문 쪽으로 뛰었다.
교문에 거의 가까워 졌을 때 쯤 누군가 비닛을 확 잡아 당겼다. 경비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비닛을 잘 아는 분이셨다. 아저씨는 비닛의 엉덩이를 때리며 소리 질렀다.
“비닛. 너 정신 차려. 여기서 나가면 너 혼자 집을 찾아갈 수 있니? 집에 간들 밥도 제대로 못 얻어 먹으면서 왜 집으로 가려고 해? 적어도 여기는 식사를 다 주잖아. 그리고 여기서 영어를 잘 배워서 나중에 엄마를 도와 드려야지.”
아저씨의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그리운 꼬마 비닛의 귀에 어떤 말이 들어왔을까?
비닛이 이제 좀 적응을 했다고 생각 되던 때 같은 기숙사에 사는 뿌야가 나를 찾아왔다.
고3인 뿌야 역시 도움을 받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지내는 꼬마 후원 학생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해놨었다.
“선생님. 비닛이 식사를 자꾸 거른 데요. 친구들이 아무리 밥 먹으러 가자고 해도 자꾸만 싫다고 한다네요.”
“그래? 왜 그러지? 혹시 기숙사에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는 건 아니고? 뿌야. 잘 좀 관찰해줘. 비닛은 아직 몸도 작고 마음도 어려서 도움이 많이 필요해.”
“네. 한번 알아 볼게요.”
나는 비닛이 많이 걱정 되었다. 무슨 일일까? 아직도 기숙사에 적응하지 못한 걸까?
다음 날 다시 뿌야가 나를 찾아왔다.
“어제 비닛 친구들에게 물어 봤는데요. 비닛이 밥을 안 먹었던 이유요.”
“그래. 왜 그랬대?”
“요즘 기숙사에서 자기 숟가락을 들고 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비닛은 숟가락이 없었나 봐요. 선생님한테 걸리면 혼날까봐 밥을 안 먹는다고 그랬었나 봐요.”
“그렇구나. 저런. 내가 숟가락 하나 사 줄게. 비닛 좀 가져다 줘.”
“아뇨. 저한테 숟가락이 하나 더 있어요. 그걸로 줄게요.”
뿌야는 가난한 동생의 마음을 이해한 다는 듯이 선뜻 자기의 숟가락을 주겠다고 했다.
가난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고 했던가.
며칠 후 평소보다 일찍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길에 비닛을 만났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비닛의 얼굴은 예전 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네가 비닛이지? 안녕?”
“안녕하세요.” 부끄럼 많은 비닛은 친구들 뒤에 숨어서 나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우리 비닛 착하다. 공부 열심히해.” 난 그저 웃는 얼굴로 비닛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비닛은 낯선 아줌마의 손길이 싫지 않은 듯 살며시 미소를 내게 건네고는 기숙사로 향했다.
얼마 안 있으면 방학인데 저렇게 의젓한 모습으로 엄마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가난을 이겨가는 거고 그렇게 커가는 거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훌쩍 자라 있을 비닛과 그런 비닛을 보며 행복해 할 비닛의 엄마를 생각해 보았다.
나쁘지 않는 상상이었다.
또래 친구들과 조잘 거리며 기숙사로 가는 비닛의 손에 있는 식판과 작은 숟가락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조금 힘들면 어때. 괜찮아. 비닛. 넌 새로운 시작을 했고 이제 더 좋은 미래가 널 기다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