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했던 만남이 인연이 되기까지.
수제타(Sujeta) 와의 만남은 그리 즐거운 기억이 아니었다.
집 바로 옆에 있는 구아바 나무에 허락 없이 올라가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물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수제타와 친구들은 나에게 아주 귀찮은 아이들이었다.
친절도 한 두 번이 쉽지 계속 찾아와 나를 귀찮게 만드는 아이들을 매번 웃음으로 반기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저분한 옷을 입고 우리 집 마당에 불쑥 불쑥 나타나 내 신경을 곤두서게 하던 아이들.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 보다는 너무 가까워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수제타가 우리 집에 오는 일도 줄어들 때 쯤 그 일이 일어났다.
나른한 오후,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피아노를 가르치러 가야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 키우는 셰퍼드 록키가 크게 짖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난 궁금한 마음에 일어나 창문으로 밖을 바라봤다. 록키가 수제타를 향해 짖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생각하며 밖으로 뛰어갔다.
록키는 수제타를 향해 계속 짖고 있었고 수제타는 길옆에 있는 작은 구덩이에 빠져 있었다.
나는 급하게 수제타를 위로 올렸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원래 겁이 많은 수제타가 록키가 짖는 걸 보고 무서워 달려가다가 구덩이에 빠진 것이었다.
수제타는 대변을 보려고 이곳 캠퍼스에 왔는데 개가 있어서 무서워 도망가다가 넘어졌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집 주위를 화장실로 생각하다니......
며칠 전 아침 일찍 우리 집 주위에서 볼일을 보다가 나에게 들켜 도망가던 사람들이 기억났다. 대부분의 인도 시골 사람들은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자연으로 나가서 볼일을 본다.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집과 캠퍼스가 화장실로 느껴졌다는 것이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게 수제타는 엄마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제타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 개가 짖어서 아이가 넘어진 것이니 우리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따졌고 또 우리 캠퍼스에 사는 사람들은 저 사람들의 잘못이니 절대 배상하면 안 된다고 했다. 사실 수제타 마을 사람들은 허락 없이 염소와 소를 캠퍼스에 묶어놔서 캠퍼스에서 심어 놓은 것들을 다 먹어치우곤 했었다. 캠퍼스에 사는 사람들에게 마을 사람들은 아주 고집 세고 말 안 듣는 마을 사람들로 통했다. 그래서 더욱 반대가 심했다.
양쪽의 반대 사이에 우리가 있었다. 나는 많은 소문들과 소리들 사이에 며칠을 고민하다가 수제타를 찾아갔다.
봉지에 든 사과와 석류, 수제타에게 줄 원피스 하나, 그리고 크레파스가 내 손에 들려있었다.
소똥으로 잘 정리해 놓은 마당을 지나 수제타의 방에 들어갔다. 흙바닥에 대나무와 양철로 만든 집. 집 안 오른 쪽 하나 밖에 없는 침대 위에 수제타가 누워 있었다. 침대 반대편이 부엌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던 지 가스레인지와 작은 소스들이 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이제까지 나를 귀찮게 하던 수제타 였다. 그리고 우리 집과 캠퍼스에 새로 심은 코코넛 나무와 과일 나무들을 다 먹어 치운 염소와 소들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직접 그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또 달랐다. 그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모를 측은함으로 다가왔다.
수제타 엄마와 짧은 대화를 나눈 후 우린 다친 수제타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리고 수제타와 주변에 사는 친구들에게 리코더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돈으로 돕는 것은 금방 사라지지만 무엇을 가르친 다는 것은 아이들 평생에 남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자. 음악으로 아이들의 삶에 즐거움을 전해 주자.’
그렇게 우리의 리코더 교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