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미 Nov 07. 2017

행복 부는 리코더

마을 아이들과  첫 리코더 교실

우리 집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곳에는 ‘실리구리’라는 도시가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이 면 정도 된다면 실리구리는 특별시 정도이다.

우리 동네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은 대부분 실리구리에서 구할 수 있다.

오랜만에 나는 남편과 실리구리로 향했다. 인도의 도로는 움푹 파인 곳도 많고 먼지도 많다. 두빠따(인도 스카프)로 얼굴과 머리를 꽁꽁 싸매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은 악기사를 찾아가 꼭 리코더를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먼지 날리는 인도 길도 즐겁기만 했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리코더. 물론 한국 리코더에 비하면 음질도 소리도 좋지 않지만 아이들이 리코더를 받고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뜨거운 태양이 조금 누그러들 시간. 난 통역을 해 줄 마실라와 함께 수제타가 사는 마을로 향했다.


캠퍼스 문을 열고 나왔다. 중간 중간 부서진 시멘트 도로를 걸어서 큰 도로로 나가자 양쪽으로 낡은 집들이 보인다.

수제타가 사는 집이다. 도로 주위에 낡은 나무들과 양철로 집을 짓고 사는 이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부족들이라고 했다.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염소와 소를 기르거나 일용직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여인들은 나뭇가지들을 주워서 불을 때고 밥을 했고 풀을 베서 소를 먹이기도 했다.

지나다니며 그들을 보기는 했지만 가까이 하지 않았던 사람들. 오늘 그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수제타 집에 들어서자 수제타의 할머니가 반갑게 우리를 반겼다.

할머니가 가지고 오신 플라스틱 의자 위에 앉아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리가 다 나은 수제타는 친구들을 데리고 오느라 바쁘다.

가지고 간 뽀로로 매트 위에 아이들이 앉았다. 우리 집에 와서 과일을 따먹던 낯익은 아이들도 보였고 처음 보이는 아이들도 보였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리코더를 보이자 환호성이 들렸다. 처음 보는 악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있는 힘껏 불어대니 마당 전체가 리코더 소리이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모두 귀를 막으며 한참을 웃었다.

인도에서 국립 학교란 아주 가난한 아이들만 다니는 곳이다. 오전 10시 정도에 학교를 가서 오후 4시에 수업을 마친다. 특별히 공부를 시키지도 않고 자주 결석을 해도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곳에 미술이나 음악교육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는 현실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환호성이 더 컸는지 모른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아이들과 리코더를 가르쳤다. 작은 손가락들이 리코더 구멍을 제대로 막지 못해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도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났다.


다음 주에 만나기로 약속을 전하고 집으로 발걸음 옮긴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걸어오는 길 몇 명의 아이들이 계속 우리를 따라 온다. 한 아이는 나의 손을 잡고 한 아이는 나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이 만지는 손의 온기가 싫지 않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시간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던 그 때 우리는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둠이 찾아드는 시간 마실라와 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한 손에는 리코더를 다른 한손에는 뽀로로 매트를 들고 걸어가는 길.

나는 손에 있던 리코더를 보며 미소 지었다.

행복을 부는 마법의 리코더를 가진 사람 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꿈꿀 수 있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