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단순한 감정이 그립다
아이들 학교에 체육대회가 있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티셔츠로 나눠 입은 네 팀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섞여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자기 차례가 오면 긴장한 얼굴로 운동장으로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왠지 풋풋했다.
이를 악 물고 100미터를 달리는 아이들. 그 중에 유난히 키 작은 아이들이 일등을 달릴 때면 관중석에서는 더 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선명한 옷 색깔만큼, 기둥에 매달려 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선만큼,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여 자기편을 응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만큼 운동장은 즐거운 소리와 풍경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친구가 전부였고 학교가 전부였던 시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그리 큰 학교가 아니었다.
문과 한 반과 이과 한 반으로 나눠졌던 고등학교 시절.
체육대회가 있는 날 만큼은 함께 무리지어 다니던 친구들도 모두 문과와 이과로 백군과 청군으로 나눠졌다.
달리기부터 발야구와 멀리 뛰기 등 모든 경기들이 백군과 청군의 점수로 연결되던 그때.
우리는 백군의 승리를 위해, 청군의 승리를 위해 뛰고 던지고 소리 지르고 응원했다.
그리고 마지막 승자와 패자를 발표 던 시간은 환호성과 함께 울음바다가 연출되기도 했다.
우리 문과가 패자가 되었던 그 날.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이건 심판 선생님이 차별한 것이라며, 이건 부당한 결과라며 소리치며 울었다.
체육대회에서 승리를 해서 하나가 되기도 했고 패자가 되어서 속상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런 때가 있었다.
이제는 누군가와의 시합에서도 모른 척 져 줄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면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만의 철칙도 만들었다.
하지만 울고 웃으며 하루를 보내던 그때가 여전히 그리운 것은
아마도 그때만큼 쉽게 즐거워하고 속상해 하며 나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시간에 살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손을 꽉 쥐고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서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달리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그 단순한 열정을 내 마음에 담는다.